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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 수가 없다 (이병헌, 블랙코미디, 박찬욱) 실직한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영화인데, 보는 내내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뒤 국내 개봉했고, 저는 극장을 나오면서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건지, 불편했던 건지, 솔직히 그 경계가 잘 안 잡혔거든요. 이병헌이 연기한 유만수, 도대체 뭐가 문제였나직장을 잃으면 사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영화는 이 질문을 꽤 잔인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유만수는 태양제지에서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 직원입니다. 올해 펄프맨상까지 수상할 만큼 업계에서 인정받았죠. 그런데 미국계 사모 펀드(Private Equity Fund)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하루아침에 구조조정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사모 펀드.. 2026. 8. 12.
영화 아노라 해설 (계약, 노동, 존엄)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아노라》가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였다가, 중반을 지나면서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느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결국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습니다. 이 영화를 로맨스로 읽는 시각도 있고, 계급 비판으로 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어느 쪽보다 '노동하는 사람의 존엄'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계약으로 이루어진 관계, 사랑인가 거래인가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처음 정리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철저히 계약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트립 클럽에서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서 에스코트 서비스 요청, 일주일 짜리 여자친구 계약, 그리고 결혼까지. 총 세 번의 계약이 순서대로 체결됩니다... 2026. 8. 12.
영화 대부 (캐스팅, 교차편집, 가족붕괴) 《대부》를 처음 본 사람과 세 번째로 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게 정말인지 저도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경험해보니 그 말이 맞았습니다. 처음엔 마이클의 냉혹한 변신이 압도적이었고, 시간이 지나 다시 보니 비토 코를레오네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가족이 오히려 그 손으로 무너져 가는 구조가 보였습니다. 1972년작이 지금도 영화 설문에서 1~2위를 다투는 이유, 단순히 "고전이라서"가 아닙니다. 반대만 12명, 그 캐스팅이 왜 불가능해 보였나《대부》 제작 과정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감독 선정이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코스타 가브라스 등 내로라하는 감독 12명이 연출을 거절한 뒤, 당시 32살의 신진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기회가 돌아왔습니다. 파라마운트가 코폴라.. 2026. 8. 12.
배우 히스 레저 (다재다능, 브로크백마운틴, 조커) 히스 레저를 처음 알게 된 건 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경기장 관람석에서 밴드를 매수해 노래를 부르는 그 장면, 웃기면서도 괜히 설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제가 알던 그 청춘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스물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배우가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남겼다는 사실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재다능 — 체스판부터 안무까지, 학교가 담지 못한 소년히스 레저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카트 레이싱 지역 우승, 학교 대표 하키 선수, 전국 댄스 대회 우승 안무가까지, 이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싶었으니까요.그런데 이 댄스 대회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8분짜리 공연 안.. 2026. 8. 11.
배우 스티븐 연 (정체성, 필모그래피, 소속감)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는 질문에 90% 이상이 둘 다 아니라고 답했다는 설문 결과가 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제 조사입니다. 스티븐 연의 이야기를 처음 제대로 들었을 때, 저는 그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한 사람의 성격과 진로, 심지어 연기 스타일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정체성: 두 세계 사이에서 자란 배우학교에서 유독 조용하고 수줍음 많은 아이였던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지만, 스티븐 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게 타고난 성격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는 원래 시끄럽고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가 동양인 남성에게 기대하는.. 2026. 8. 11.
영화 프레스티지 줄거리 (크리스토퍼 놀란, 집착, 희생, 반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아,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 싶어 처음 장면으로 되감아본 적 있으신 분 계실 겁니다. 저는 《프레스티지》를 처음 봤을 때 딱 그랬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결국 처음부터 다시 틀었습니다. 두 마술사가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사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정교한 마술이었습니다.두 마술사의 집착이 만들어낸 비극19세기 말 런던을 배경으로, 알프레드 보든과 로버트 앤지어는 같은 무대에서 출발한 두 마술사입니다. 그런데 공연 도중 일어난 사고로 앤지어는 아내 줄리아를 잃게 됩니다. 수조 탈출 마술 중 밧줄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앤지어는 그 원인을 보든의 이중 매듭(double knot) 탓으로 돌립니다. 이중 매듭이란 풀기.. 2026.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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