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 레저를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경기장 관람석에서 밴드를 매수해 노래를 부르는 그 장면, 웃기면서도 괜히 설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후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제가 알던 그 청춘 배우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스물여덟 살에 세상을 떠난 배우가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을 남겼다는 사실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재다능 — 체스판부터 안무까지, 학교가 담지 못한 소년
히스 레저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카트 레이싱 지역 우승, 학교 대표 하키 선수, 전국 댄스 대회 우승 안무가까지, 이게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댄스 대회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8분짜리 공연 안무를 혼자 짰는데, 1950년대 뮤지컬 배우 진 켈리의 움직임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진 켈리는 재즈 댄스와 발레를 접목한 독자적인 무브먼트 스타일로 유명한 배우인데, 쉽게 말해 몸 자체가 악기처럼 표현 도구가 되는 연기 방식을 구현한 인물입니다. 10대 소년이 그 춤을 연구해 안무로 만들었다는 건, 단순한 재능이 아니라 집착에 가까운 몰입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리고 그 팀은 서호주 전역 학교를 상대로 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남학생으로만 이루어진 팀이 우승한 건 대회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열일곱 살에 학교를 그만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누나가 아역 배우로 활동하는 모습을 본 뒤 직접 소속사에 찾아가 배역을 알아봐 달라고 졸랐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그 나이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이 단순한 충동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체스, 스포츠, 댄스, 연기까지 무엇 하나 흉내만 내고 지나치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브로크백 마운틴 — 잘생긴 스타를 거부하고 택한 길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가 흥행한 직후,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비슷한 역할 제안을 쏟아냈다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습니다. 그런데 히스 레저는 에이전트에게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섹시함을 강조하는 배역은 모두 거절해 달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자 실제로 단 한 편의 제안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선택에 대해 무모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여기서 그의 장기적인 자기 브랜딩 감각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이미지의 역할을 반복하다 보면 제작사가 다른 결의 캐릭터를 제안할 때 그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걸 그는 일찍이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공백기를 지나며 쌓은 작품들이 결국 2005년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이어집니다. 이안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두 남자의 억압된 감정을 다룬 작품입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영화 안에서 인물이 내면적으로 변화하는 궤적을 뜻하는 영화 용어인데, 히스 레저가 연기한 에니스 델 마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면서도 그 무게가 전신에서 느껴지는 캐릭터였습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봤을 때,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 같은 이 인물의 연기가 오히려 더 오래 남았습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수익을 거뒀고, 이안 감독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히스 레저도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 시점부터 그는 더 이상 하이틴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 않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 흥행 보장 역할을 스스로 차단하고 의도적으로 공백기를 선택한 배우
- <몬스터 볼>에서 조연으로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연기력 입증
-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공식 인정받음
- 이 영화를 통해 상대역 미셸 윌리엄스와 실제 연인이 되어 딸 마틸다를 낳음
조커 — 6주간의 칩거가 만들어낸 캐릭터
히스 레저가 조커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팬들과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악역이라는 설정 자체를 그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배트맨 비긴즈>를 본 뒤 마음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슈퍼히어로의 인간적인 고뇌를 정면으로 다룬 연출 방식이 그를 움직인 것이죠.
그는 런던의 한 외진 호텔에 6주간 칩거하며 캐릭터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원작 만화를 몰아보고, 조커만의 심리 일기를 써내려갔으며, 수십 가지 목소리와 말투를 시도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참고가 된 영화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1971)였는데, 이 작품은 폭력과 자유의지를 주제로 반사회적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작품으로 영화사에서 심리적 리얼리즘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쉽게 말해 규칙 바깥에 존재하는 인간의 충동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가를 다룬 영화입니다.
방법론적 연기(method acting)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배우가 촬영 밖에서도 캐릭터의 심리와 생활 방식을 실제로 체험하며 몰입도를 높이는 연기 기법입니다. 히스 레저가 보여준 방식은 전형적인 방법론적 연기에 가까웠습니다. 메이크업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고, 배트맨에게 보내는 협박 편지를 직접 셀프 카메라로 촬영해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병원 폭발 장면은 CG 없이 실제 건물을 폭발시키며 단 한 번 찍었습니다. 폭발을 등지고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오는 그 장면을 보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조커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았다고 극찬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도 뭔가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는데, 이유를 한참 뒤에야 알 것 같았습니다. 그 걸음걸이에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스물여덟 — 완성이 아닌 과정에서 멈춘 배우
히스 레저는 2008년 1월 뉴욕의 호텔 방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약물 사고였습니다. 극심한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항우울제, 수면제 등 여러 처방약을 함께 복용해 오던 중 생긴 비극이었습니다. 누나는 사망 사흘 전에도 약을 함부로 섞어 먹지 말라고 직접 당부했다고 합니다.
불면증(insomnia)이란 잠들지 못하거나 수면을 유지하지 못하는 상태를 반복적으로 겪는 수면 장애로, 정서적 스트레스와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히스 레저의 경우 미셸 윌리엄스와의 결별, 딸의 양육권을 얻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정서적 불안정이 불면증을 악화시킨 주요 요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그가 사망 전 인터뷰에서 "항상 배역을 맡을 때마다 스스로를 의심했다. 어떻게든 연기를 잘하는 척 속여온 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는 사실입니다. <다크 나이트>는 그의 사망 이후인 2008년 7월에 개봉했고, 전미 흥행 1위를 기록하며 슈퍼히어로 영화 사상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작품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가 그 반응을 직접 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남습니다.
히스 레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연기상 후보가 나온 것도, 악역 캐릭터로 수상한 것도 모두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가족이 대리 수상했습니다. 한창 촬영 중이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조니 뎁, 콜린 파렐, 주드 로가 캐릭터를 이어받아 완성했고, 세 배우는 출연료 전액을 히스 레저의 딸 마틸다에게 기부했습니다.
조커로만 기억하기엔 그가 거쳐온 역할들이 너무 다양합니다. 동성애자 자전거 선수, 몰락한 왕국의 왕자, 처형을 앞둔 교도관, 마상 창 시합의 기사, 카사노바, 그리고 억눌린 감정 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남자까지. 저는 그를 조커로 모든 것을 소진한 비극적인 배우가 아니라, 매번 익숙한 이미지를 스스로 지워가며 새로운 인물을 찾아가던 배우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히스 레저는 왜 스파이더맨 제안을 거절했나요?
A. 당시 히스 레저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자신이 원하는 진지한 역할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해 오디션조차 보지 않고 거절했습니다. 이후 <배트맨 비긴즈>를 본 뒤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수락하게 됩니다. 단순히 제안을 거절한 게 아니라 '어떤 역할이냐'를 기준으로 판단했던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Q. 히스 레저가 조커 준비에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입한 게 사망에 영향을 준 건가요?
A. 공식 사인은 약물 복합 과용으로, 조커 역할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불면증과 우울증이 이미 진행 중이었고, 미셸 윌리엄스와의 결별 등 개인적인 정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커 준비가 심리적 부담을 더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만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은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습니다.
Q. 히스 레저의 딸 마틸다는 지금 어떻게 지내나요?
A. 마틸다 레저는 2005년생으로, 아버지 사망 당시 세 살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미셸 윌리엄스 밑에서 성장했으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출연했던 조니 뎁, 콜린 파렐, 주드 로는 출연료 전액을 마틸다에게 기부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는 이 에피소드에서 영화계 동료들이 히스 레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는지가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Q. 히스 레저가 아카데미 수상 당시 직접 받지 못한 이유가 뭔가요?
A. <다크 나이트>는 2008년 7월 개봉했는데, 히스 레저는 그해 1월에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이 발표될 때 그의 가족이 대리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역사상 슈퍼히어로 영화 배우가 연기상을 받은 것도, 악역으로 수상한 것도 모두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결론
히스 레저의 필모그래피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이 배우가 얼마나 의식적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갱신해 왔는지가 보입니다. 흥행이 보장된 역할을 스스로 차단하고, 비슷한 캐릭터의 반복을 거부하며, 매번 낯선 곳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 결과가 조커였고, 조커는 그의 마지막 완성작이 되었습니다.
조커라는 역할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어 다른 작품들이 가려진 측면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침묵, <몬스터 볼>의 담담한 절망, <기사 윌리엄>의 활기까지 그 모두가 히스 레저입니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조커 이전의 작품들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완전히 다른 배우를 만나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