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14 영화 박하사탕 리뷰 (이창동, 설경구, 역순서사, 국가폭력, 순수의상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철길 위에서 절규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거꾸로 풀리면서, 어느 순간 그 분노가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역순 구조로 한 인간의 붕괴를 추적하는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지금 내가 쌓아가고 있는 선택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역순서사 — 현재에서 과거로 달리는 기차《박하사탕》이 택한 서사 방식은 역순서사(Reverse Chronology)입니다. 여기서 역순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결말에서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이미 망가진 영호를 먼저 본 뒤,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조각조각 거슬러 올라가며 알게 .. 2026. 9. 4. 영화 오아시스 (사회적 시선, 장애 여성 인권, 동의) 장애인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왜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하는 걸까요. 2002년 개봉한 영화 〈오아시스〉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제가 처음 느낀 건 감동이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제 안에 있던 편견의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사회적 시선 —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일반적으로 〈오아시스〉는 '장애인과 전과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소개됩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찾아본 것도 그 프레임 때문이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소개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핵심을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종두는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전과 4범입니다. 공주는 뇌성마비(腦性痲痺)를 앓고 있는 여성입니다. 뇌성마비란 태아기 또는 출생 전후에 뇌가 손상되어 운동 기능과 자세.. 2026. 9. 4. 영화 시 리뷰 (이창동, 윤정희, 윤리적 응시, 알츠하이머) 아름다운 시를 쓰려면 먼저 아름다운 것을 봐야 할까요? 이창동 감독의 2010년작 〈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감동 때문이 아니라 불편함 때문이었다는 게 지금도 선명합니다. 성폭력과 자살, 치매라는 소재를 쥐고서도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관객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윤리적 응시 —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끝까지 보는 일〈시〉는 오프닝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강가에서 뛰어노는 평화로운 장면 뒤로 소녀의 시체가 떠내려오고, 그 위에 영화 제목 '시'가 새겨집니다. 제가 이 오프닝을 두고 꽤 오래 생각했는데, 여기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의 .. 2026. 9. 3. 영화 버닝 해석 (이창동, 의심의 서사, 청춘의 결핍, 종수의 선택)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건지, 해미는 어디로 간 건지, 벤은 정말 살인자인지. 이창동 감독의 2018년작 〈버닝〉은 보고 나서 오히려 질문이 늘어나는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의 핵심은 '진실이 무엇인가'보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우리가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내는가'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심의 서사 — 종수는 왜 벤을 범인으로 확신했는가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벤의 집 서랍에서 여성 액세서리들이 발견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종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게 이창동 감독이 의도한 영화적 트릭이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2026. 9. 3. 영화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로맨스, 이미지 변신, 영 어덜트)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트와일라잇을 봤을 때, 제가 기대한 건 공포와 긴장감이 가득한 뱀파이어 영화였거든요. 그런데 스크린에서 만난 에드워드 컬렌은 무섭기는커녕 창백한 피부가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2008년 개봉 이후 전 세계 팬을 열광시킨 이 작품이 뱀파이어 장르를 어떻게 완전히 뒤집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설정이 지금 시점에서도 유효한지 제 시각에서 짚어봤습니다. 뱀파이어 로맨스의 계보, 트와일라잇이 서 있는 자리제가 처음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접한 건 토요명화에서 우연히 본 1994년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습니다. 파리하게 하얀 얼굴의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가 화면을 채우던 그 장면이, 조그마한 저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사람을 죽인다'는 모순을 처음으로 각인시.. 2026. 9. 2.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 (마크 러팔로, 성장, 관계, 행복)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원하는 직업, 예쁜 집, 멋진 사람들. 그것들이 갖춰지면 뭔가 완성되는 줄 알았죠.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 가지 없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13살 제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야기인데, 정작 소원이 이루어진 뒤에 제나가 잃어버린 것들이 훨씬 묵직하게 남았습니다. 어릴 때 꿈꾸던 성장의 진짜 의미제나는 13살입니다. 치아 교정기를 하고 있고, 친한 친구라곤 또래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매트뿐이죠.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6공주 패밀리와 어울리고 싶어 하고, 보여지는 것에 온 신경이 쏠려 있는 사춘기 소녀입니다.직접 겪어보니, 저도 그 나이엔 비슷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것보다 '남들이.. 2026. 9. 2. 이전 1 2 3 4 5 6 7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