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박하사탕 리뷰 (이창동, 설경구, 역순서사, 국가폭력, 순수의상실)

by hoziii 2026. 9. 4.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철길 위에서 절규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거꾸로 풀리면서, 어느 순간 그 분노가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역순 구조로 한 인간의 붕괴를 추적하는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지금 내가 쌓아가고 있는 선택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역순서사 — 현재에서 과거로 달리는 기차

《박하사탕》이 택한 서사 방식은 역순서사(Reverse Chronology)입니다. 여기서 역순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결말에서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이미 망가진 영호를 먼저 본 뒤,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조각조각 거슬러 올라가며 알게 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 구조가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에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던 영호는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거꾸로 흐를수록 저는 그를 판단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1979년 가을, 공장 소풍 나들이에서 들꽃을 바라보며 "사진 찍고 싶다"고 말하던 순수한 청년의 얼굴이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합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빠지는 걸까요, 아니면 조금씩 변해가는 걸까요? 제 경험상 후자에 가깝습니다. 저 역시 지나간 일들을 되짚어보면, 당시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선택 하나가 나중에 생각보다 훨씬 큰 파문을 남긴 경우가 있었습니다. 영호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 건 그래서였을 겁니다.

《박하사탕》은 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수록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200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며 이 역순 구성의 완성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단순히 구조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그 구조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가 되감기하듯 과거로 달리는 장면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억지로 되돌리려는 영호의 절규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역순서사가 완성하는 효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관객은 결말(영호의 붕괴)을 먼저 보기 때문에, 과거 장면 하나하나가 복선처럼 읽힙니다.
  •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을 먼저 보여주고, 나중에 공감의 여지를 열어둠으로써 감정적 충격이 배가됩니다.
  •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순수한 영호의 얼굴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슬픔을 만들어냅니다.
요약: 역순서사 구조는 단순한 형식 실험이 아니라, 한 인간의 붕괴를 가장 슬프게 전달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국가폭력과 순수의 상실 — 영호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박하사탕》을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장면은 광주였습니다. 1980년, 신병이던 영호는 계엄 출동 명령을 받고 시민들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여학생을 의도치 않게 사살합니다. 집에 가야 한다던 그 여학생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여기서 국가폭력(State Violence)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국가폭력이란 국가 권력이 개인 혹은 집단에게 물리적·구조적으로 가하는 강제력을 의미합니다. 영호는 국가의 명령 체계 안에서 폭력의 도구가 되었고, 그 트라우마는 이후 형사 생활에서의 고문, 가정 내 폭력, 인간관계의 파괴로 이어집니다. 개인의 상처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연쇄 구조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화가 영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경우엔 이 지점이 오히려 영화를 더 불편하게, 그래서 더 강하게 만든다고 느꼈습니다. 영호는 분명 시대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가족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이기도 합니다. 그 모순이 영화 내내 해소되지 않은 채 관객 앞에 놓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호의 내면과 몰락을 중심으로 서사가 집중되다 보니, 그에게 직접 상처를 입은 인물들—순임, 홍자, 영호가 고문했던 명식—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머뭅니다. "상처받은 남성이 왜 폭력적이 되었는가"를 깊이 파고드는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는 비판은 충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이 지점은 영화가 지닌 한계이자, 동시에 이 영화가 남기는 숙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핵심 질문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 자료에서도 확인되듯, 《박하사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국 현대사의 폭력을 한 개인의 생애와 정교하게 엮어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개인의 비극을 역사적 맥락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선 기록으로서의 힘이 있습니다.

영호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외침이 저에게 특별하게 들렸던 이유는 이겁니다. 그건 어떤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더럽혀지지 않았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박하사탕처럼 맑고 단순했던 그 처음으로요.

요약: 영호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로, 이 모순이 영화를 단순한 동정의 서사가 아닌 윤리적 질문으로 만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박하사탕 영화, 시간 순서가 헷갈리는데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A. 처음부터 모든 걸 파악하려 하기보다, 각 에피소드가 영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집중하면 훨씬 수월합니다. 에피소드마다 연도가 자막으로 표시되니 그걸 기준점으로 삼으면 됩니다. 다 보고 나서 다시 처음 장면을 떠올려보면, 처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Q. 박하사탕에서 광주 장면이 꼭 필요했나요?

A. 영호의 붕괴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실패로만 설명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봅니다. 광주 장면이 있어야 국가가 한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만들고, 그 상처가 다시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그 장면을 빼면 영호는 그냥 나쁜 사람이 되고 맙니다.

 

Q. 박하사탕에서 순임은 왜 중요한 인물인가요?

A. 순임은 영호의 순수했던 시절을 가장 직접적으로 기억하는 인물입니다. 그녀가 건네는 박하사탕과 카메라는 영호가 한때 사진을 찍고 싶어 했던 사람, 즉 아름다움을 간직하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순임을 통해 우리는 영호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됩니다.

 

Q. 영화를 보고 너무 우울해지면 어떡하죠?

A. 저도 처음 봤을 때 한동안 무거운 기분이 이어졌습니다. 다만 이 우울함이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기보다는, 지금 내가 쌓아가는 선택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꽤 쓸모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겁지만 그래서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결론

《박하사탕》은 과거를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영화가 정말로 겨누는 곳은 '지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호의 기차는 이미 출발했고, 그 기차를 만든 건 어느 하나의 결정적 실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작은 선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지금 제가 쌓아가고 있는 선택들은 어떤 기차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아직 박하사탕을 보지 않으셨다면, 편한 날 혼자 조용히 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끝나고 나서 생각이 길어지는 건 감수하셔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WADl8cAD-28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