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트와일라잇을 봤을 때, 제가 기대한 건 공포와 긴장감이 가득한 뱀파이어 영화였거든요. 그런데 스크린에서 만난 에드워드 컬렌은 무섭기는커녕 창백한 피부가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졌습니다. 2008년 개봉 이후 전 세계 팬을 열광시킨 이 작품이 뱀파이어 장르를 어떻게 완전히 뒤집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설정이 지금 시점에서도 유효한지 제 시각에서 짚어봤습니다.

뱀파이어 로맨스의 계보, 트와일라잇이 서 있는 자리
제가 처음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접한 건 토요명화에서 우연히 본 1994년작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통해서였습니다. 파리하게 하얀 얼굴의 브래드 피트와 톰 크루즈가 화면을 채우던 그 장면이, 조그마한 저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사람을 죽인다'는 모순을 처음으로 각인시켜 줬습니다.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꽤 묵직한 배경이 나옵니다. 1897년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출처: Project Gutenberg)가 피를 마시고 햇빛에 약하며 박쥐로 변신하는 뱀파이어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완성했고, 이후 무르나우의 흑백 영화 노스페라투(1922년)가 그 이미지를 스크린에 처음 옮겨놨습니다. 여기서 '전형적인 이미지'란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뱀파이어, 즉 인간을 위협하고 잡아먹는 괴물로서의 설정을 말합니다.
그 공식이 1976년 앤 라이스의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뱀파이어에게 '사연'과 '내면'을 부여한 것인데, 이게 현대 뱀파이어 로맨스의 근간이 됩니다. 그리고 트와일라잇은 그 계보의 끝자락에서 장르를 완전히 재설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테파니 메이어의 원작 소설은 2005년 출간 이후 1부 트와일라잇만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130주간 오르며(출처: New York Times Best Sellers) 팔자가 달라지는 수준의 성공을 거뒀고, 전 세계 1억 6천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 1897년 —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공포의 뱀파이어 원형 완성
- 1922년 — 노스페라투: 뱀파이어의 스크린 첫 등장, 흑백 영화의 고전
- 1976년 —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내면과 사연을 가진 뱀파이어로 전환점
- 2005년 — 스테파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뱀파이어를 로맨스 판타지의 주인공으로 전면 재설계
이미지 변신, 에드워드 컬렌이 뱀파이어 장르에 한 일
트와일라잇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장면은 에드워드가 햇빛 아래 서는 장면이었습니다. 피부가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는 그 설정을 보고,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맞나?' 싶었거든요. 뱀파이어는 햇빛에 타 죽는 존재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너무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설정이야말로 트와일라잇이 장르 재정의에 성공한 핵심입니다. 기존 뱀파이어물의 '약점'을 모두 제거하거나 뒤집었거든요. 햇빛에 취약하다는 설정은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마늘과 십자가에 약하다는 설정은 슬쩍 삭제해 버렸습니다. 송곳니의 공포스러운 이미지도 희석됐고요. 대신 에드워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텔레파시 능력, 앨리스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을 갖습니다. 여기서 텔레파시와 예지력은 초감각적 지각(ESP, Extra Sensory Perception)의 일종으로, 일반적으로 SF나 슈퍼히어로물에서 다루는 설정입니다. 트와일라잇의 작가가 뱀파이어 장르보다 슈퍼히어로물을 더 좋아했다는 인터뷰가 있는데, 제가 보기엔 그게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에드워드가 차 한 대를 한 손으로 막는 장면, 벨라를 등에 업고 산속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어벤져스나 엑스맨에 가까운 묘사입니다. '뱀파이어'라는 기호를 빌렸지만 실제로는 슈퍼히어로 로맨스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입니다. 이미지 변신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장르 자체의 하이브리드화입니다. 여기서 하이브리드화란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을 결합해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다만 이 설정을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뱀파이어 장르의 본래 공포 문법을 지워버렸다는 아쉬움을 표하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대중성을 확보한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장르 팬에게는 실망스러운 변형이지만, 판타지 로맨스 장르 전체에는 문을 활짝 열어준 선택이었으니까요.
영 어덜트 소설의 서막, 그리고 지금 다시 보는 시선
트와일라잇을 영 어덜트 소설의 서막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 어덜트(Young Adult, YA)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을 주요 독자층으로 삼되, 성인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된 장르를 말합니다. 이전에도 청소년 대상 소설은 있었지만, 트와일라잇은 30대, 40대, 50대까지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도 이 소설을 영화로 먼저 본 뒤 당일에 원작 소설을 구매하신 분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흡인력의 정체는 '평범한 나를 특별한 존재가 선택한다'는 판타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벨라는 특별한 능력이 없습니다. 전학 온 평범한 소녀입니다. 그런데 수십 년을 살아온 에드워드에게 벨라의 존재는 절대적인 예외가 됩니다. 이 구조가 나이와 상관없이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는 겁니다. '꺼진 적 없는 불씨'를 건드린다고 표현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도 그 말이 맞다고 봅니다. 로맨스에 대한 갈망이 나이가 들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깐 바빠서 덮어뒀을 뿐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보호적 행동이 지나치게 통제적으로 보이는 장면들, 그리고 벨라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에드워드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서사입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집착과 의존이 낭만화된다는 지적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 비판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시절의 감성으로 돌아가 보면, 그 극단적인 헌신 자체가 로맨틱하게 느껴졌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캐스팅 역시 그 설득력에 한몫했습니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세드릭 디고리를 연기했던 로버트 패틴슨이 5,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에드워드 역을 맡았고,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천진난만한 10대의 얼굴과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동시에 품고 있어 벨라라는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했습니다. 이후 로버트 패틴슨은 코스모폴리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퍼스널 쇼퍼 등 예술적인 작품들에서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습니다. 두 배우 모두 트와일라잇이라는 꼬리표 없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간 드문 경우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트와일라잇 원작 소설은 영화랑 많이 다른가요?
A.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원작 소설은 벨라의 내면 독백이 훨씬 풍부합니다. 영화가 비주얼과 분위기로 설득한다면, 소설은 심리 묘사로 빠져들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은 분들이 소설이 더 재밌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도 그런 분들의 말이 이해됩니다.
Q.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총 몇 편인가요?
A. 원작 소설은 1부 트와일라잇, 2부 뉴문, 3부 이클립스, 4부 브레이킹 던으로 구성됩니다. 영화도 소설과 동일한 흐름으로 제작됐고, 4부 브레이킹 던은 두 편으로 나눠 개봉했습니다. 영 어덜트 판타지 로맨스 시리즈 전체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Q. 에드워드가 햇빛에 빛나는 설정이 뱀파이어 원작과 다른 건가요?
A. 맞습니다. 기존 뱀파이어 장르에서 햇빛은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트와일라잇은 이 설정을 정반대로 뒤집어 에드워드의 피부가 크리스탈처럼 반짝이도록 묘사했습니다. 이 변형이 장르 팬들에게 이질감을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트와일라잇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봅니다.
Q. 트와일라잇이 영 어덜트 장르에 미친 영향이 뭔가요?
A. 트와일라잇 이후 헝거게임, 다이버전트, 메이즈 러너 등 판타지 로맨스 요소를 결합한 영 어덜트 시리즈가 쏟아졌습니다. 10대 독자뿐 아니라 성인 독자층까지 흡수하는 영 어덜트 장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대규모로 증명한 작품이 트와일라잇이라는 데는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결론
트와일라잇을 지금 다시 떠올리면, 완성도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푸른빛이 감도는 포크스의 화면, 비가 내리는 배경, 에드워드와 벨라의 어색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긴장감까지 모든 게 합쳐져 그 시절의 감성과 함께 각인된 작품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돌아보며 확실하게 느낀 건, 뱀파이어 로맨스라는 장르를 판타지 로맨스 전체로 확장시킨 공로와, 동시에 그 관계성이 지금의 시선에서는 비판적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는 것, 두 가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시각으로 읽느냐에 따라 다른 작품이 되는 게 트와일라잇의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접한 적 없다면 한 번쯤 보시되, 영화 이후 원작 소설까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도 그 순서로 경험했고, 소설에서 더 많은 걸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