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14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해석|한나의 문맹·악의 평범성·15살 마이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가장 오래 남았던 감정은 슬픔보다 불편함이었습니다.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한 영화가 어느 순간 홀로코스트와 전범 재판 이야기로 변하고, 우리가 어느 인물을 이해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곤란한 질문과 마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나가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이 하지 않은 죄까지 떠안는 장면에서는 쉽게 어느 편에 서기가 어려웠습니다. 한나를 구하기 위해 비밀을 밝혀야 할까요, 아니면 본인이 끝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수치심을 존중해야 할까요?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한나를 이해하는 것과 한나의 행동에 책임을 묻는 것은 동시에 가능한가라는 질문입니다.. 2026. 8. 25. 다이얼로그 스캔들 (타일러, 칼 슈미트, 피터 틸, 예외상태) 우리가 매일 TV에서 보는 좌우 진영 싸움이 진짜 권력 다툼일까요? 다이얼로그(Dialogos) 유출 명단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명단에 담긴 구도였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진보 칼럼니스트와 트럼프 사위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이 글은 그 당혹감에서 출발합니다. 칼 슈미트가 100년 전에 던진 질문정치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꺼내기 껄끄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최고의 법철학자였던 그는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당에 합류했고, 1934년 '장검의 밤' 학살을 정당화하는 글까지 썼습니다. 제목이 "총통이.. 2026. 8. 24. 작가 제인 오스틴 (품행서, 여성 자존감, 로맨스 서사) 솔직히 저는 오스틴을 꽤 오래 '결혼으로 끝나는 로맨스 작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살았던 시대와 집필 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나서야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성에게 교육도, 직업도, 자기만의 방 한 칸도 주어지지 않던 시대에, 오스틴은 가족들이 오가는 거실 한쪽에서 18세기 영국 사교계의 심리전을 정밀하게 해부해냈습니다. 그 사실 하나가 작품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들었습니다. 품행서의 시대, 오스틴이 택한 방식18세기 영국에서 인쇄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품행서(conduct book)'라는 장르가 폭발적으로 유행했습니다. 품행서란 미혼 여성이 갖춰야 할 예의범절과 덕목을 항목별로 정리한 일종의 생활 지침서입니다. 표정 관리법부터 웃음소리의 크기, 살림 솜씨, 심지어 독서 방법.. 2026. 8. 24. 넷플릭스 명작 추천 (소년의시간, 아이리시맨, 더 킬러, OTT명작) 넷플릭스 홈 화면을 10분 넘게 넘기다가 결국 예전에 봤던 작품을 또 트는 경험, 저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콘텐츠가 부족한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아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세 작품이 그 고민을 완전히 잊게 만들었습니다. 〈소년의 시간〉, 〈아이리시맨〉, 〈더 킬러〉. 제가 직접 보고 나서 '이건 넷플릭스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겠구나'라고 느낀 작품들입니다. 원테이크 촬영이 만들어낸 압도감 — 〈소년의 시간〉드라마 전체를 단 한 번의 끊김 없이 촬영하는 원테이크(One Take) 기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원테이크란 편집 없이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촬영 방식으로, 연극 무대처럼 배우와 스태프 모두가 완벽하게 동기화되어야만 성립합니다. 〈소년의 시간〉은.. 2026. 8. 24. 예능 더 커뮤니티 시즌2 (시즌1 비교, 출연진 분석, 시청 방법) 솔직히 저는 시즌1을 처음 볼 때 그냥 토론 예능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순간에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결국 정주행을 두 번 했습니다. 그 의 시즌2가 올 9월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거래'와 '라이프'라는 생존 자원 구조가 추가되면서 윤리적 딜레마가 훨씬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게임 안에 박혀 있습니다. 시즌1이 남긴 것, 시즌2가 달라진 것시즌1 방영 이후 웨이브 신규 유료가입 견인 1위를 기록했고, 청룡시리즈어워즈 예능·교양 부문 최우수작품상까지 받았습니다(출처: 웨이브 공식). 수치만 보면 성공작이지만, 제가 주목한 건 그 이유였습니다. 단순히 "누가 이기나"를 보는 서바이벌이 아니라, 출연자 본인이 평소에 주장하던 정치적·윤리적 신념이.. 2026. 8. 24.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벨 에포크, 비의지적 기억, 사랑과 욕망)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이 책을 '읽어야 하지만 절대 못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두고 있었습니다. 13권, 번역만 10년. 그 숫자만으로도 이미 손이 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이 단순히 긴 소설이 아니라, 한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욕망을 끝까지 파고드는 과정이라는 걸 알고 나서야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벨 에포크라는 시대, 그 화려함 뒤의 이면마르셀 프루스트는 1871년, 프랑스가 정치적 격동기를 막 넘긴 시점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성장한 시기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 불리는데, 프랑스어로 '좋은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벨 에포크란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산업혁명으로 부가 축적되고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던 태평성대를 가리킵니다. 빅토르 위고, 에밀 졸.. 2026. 8. 24. 이전 1 ··· 5 6 7 8 9 10 11 ··· 3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