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6 영화 박하사탕 리뷰 (이창동, 설경구, 역순서사, 국가폭력, 순수의상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철길 위에서 절규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거꾸로 풀리면서, 어느 순간 그 분노가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역순 구조로 한 인간의 붕괴를 추적하는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지금 내가 쌓아가고 있는 선택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역순서사 — 현재에서 과거로 달리는 기차《박하사탕》이 택한 서사 방식은 역순서사(Reverse Chronology)입니다. 여기서 역순서사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결말에서 시작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이미 망가진 영호를 먼저 본 뒤,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조각조각 거슬러 올라가며 알게 .. 2026. 9. 4. 영화 오아시스 (사회적 시선, 장애 여성 인권, 동의) 장애인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왜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하는 걸까요. 2002년 개봉한 영화 〈오아시스〉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제가 처음 느낀 건 감동이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제 안에 있던 편견의 지도가 그려졌습니다. 사회적 시선 —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가일반적으로 〈오아시스〉는 '장애인과 전과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소개됩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찾아본 것도 그 프레임 때문이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그 소개 자체가 이미 영화의 핵심을 빗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종두는 교도소에서 막 출소한 전과 4범입니다. 공주는 뇌성마비(腦性痲痺)를 앓고 있는 여성입니다. 뇌성마비란 태아기 또는 출생 전후에 뇌가 손상되어 운동 기능과 자세.. 2026. 9. 4. 영화 시 리뷰 (이창동, 윤정희, 윤리적 응시, 알츠하이머) 아름다운 시를 쓰려면 먼저 아름다운 것을 봐야 할까요? 이창동 감독의 2010년작 〈시〉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이 질문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감동 때문이 아니라 불편함 때문이었다는 게 지금도 선명합니다. 성폭력과 자살, 치매라는 소재를 쥐고서도 자극적인 장면 하나 없이 관객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흔들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윤리적 응시 —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끝까지 보는 일〈시〉는 오프닝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아이들이 강가에서 뛰어노는 평화로운 장면 뒤로 소녀의 시체가 떠내려오고, 그 위에 영화 제목 '시'가 새겨집니다. 제가 이 오프닝을 두고 꽤 오래 생각했는데, 여기엔 이중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의 .. 2026. 9. 3. 영화 버닝 해석 (이창동, 의심의 서사, 청춘의 결핍, 종수의 선택)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난 건지, 해미는 어디로 간 건지, 벤은 정말 살인자인지. 이창동 감독의 2018년작 〈버닝〉은 보고 나서 오히려 질문이 늘어나는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느낀 건, 이 영화의 핵심은 '진실이 무엇인가'보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우리가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내는가'에 더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심의 서사 — 종수는 왜 벤을 범인으로 확신했는가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했던 장면은 벤의 집 서랍에서 여성 액세서리들이 발견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종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사람이 범인이구나'라는 생각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게 이창동 감독이 의도한 영화적 트릭이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2026. 9. 3. 영화 가능한 사랑 (해고노동자, 이창동, 넷플릭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일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합니다. 단순히 감동적이었다거나 슬펐다는 감정으로 정리가 안 되고, 오히려 평소엔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갑자기 눈앞에 놓이는 느낌이랄까요.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 부부의 삶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이 시대에 과연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보기 전부터 그 질문 하나만으로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해고 노동자의 삶, 그리고 정체성의 붕괴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기업의 집단 해고, 즉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단순한 경제적 사건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 자체를 바꾸는 사건이라고요. 여기서 구조조정이란 기업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인력을 감축하는 .. 2026. 8. 26. 영화 밀양 해석 (이창동 감독, 전도연, 송강호, 신애, 햇볕, 종찬) 솔직히 저는 처음에 《밀양》을 그냥 슬픈 모성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보던 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애는 피해자인데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그 질문 하나가 저를 이 영화 깊숙이 끌어당겼습니다. 결국 이건 비극적인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를 발견해 가는 영혼의 여정이었습니다.신애라는 인물, 처음부터 다시 보기영화를 한 번만 본 분들은 대부분 신애를 피해자로 기억합니다. 남편을 잃고, 낯선 도시로 내려가고, 거기서 아들까지 잃은 여성. 그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입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를 '모성과 신앙의 충돌을 다룬 드라마'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두 번 세 번 다시 보면서 .. 2026. 8.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