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추천28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리뷰 (조현병, 가족 돌봄, 판단의 윤리) 저도 처음엔 부모님이 그냥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딸을 25년 넘게 아무런 외부 치료 없이 집 안에서만 돌봐온 이야기인데, 단 3개월의 입원 치료만으로 누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장면을 보고 나면 솔직히 허탈함도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2024)는 그런 작품입니다. 쉽게 판단하게 두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조현병, 25년의 기록이 시작된 이유감독 후지노 토모아키는 자신보다 여덟 살 위인 친누나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누나는 의대를 나올 만큼 총명했고, 학교에서도 활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4살이 되던 1983년, 조현병(schizophrenia) 증세가 처음 나타났습니다. 조현병이란 .. 2026. 8. 18.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 (푸딩 마일리지, 폭력성, 사랑)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푸딩을 수백 개 사서 항공 마일리지를 모으는 주인공, 이유 없이 터지는 분노, 전화 협박까지. 도대체 이게 로맨스 영화가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 이상한 영화가 제가 본 사랑 이야기 중 가장 진짜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푸딩 마일리지 실화, 그리고 배리라는 인물영화에서 배리가 푸딩을 대량 구매해 항공 마일리지를 쌓는 장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1999년 미국에서 데이비드 필립스라는 엔지니어가 헬시 초이스 푸딩 컵에 붙은 쿠폰을 대량 수집해 아메리칸 항공 마일리지를 약 120만 마일 이상 적립한 일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항공 마일리지(Frequent Flyer Miles)란 항공사가.. 2026. 8. 17. 영화 애프터썬 (기억의 왜곡, 애도, 아버지의 마음) 《애프터썬》의 아버지 캘럼은 딸을 공항에서 떠나보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화는 그 사실을 단 한 번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아버지 생각이 났고, 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기억의 왜곡 — 소피가 본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이 영화의 구조를 처음 파악했을 때 저는 꽤 놀랐습니다. 《애프터썬》에서 우리가 보는 튀르키예 여행 장면들은 실제 과거가 아닙니다. 성인이 된 소피가 약 20년 후에 몇 개 남지 않은 캠코더 영상을 돌려보며 기억을 재구성한 결과물이죠.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기억 재구성(Memory Reconstruction)'입니다. 심리학에서 기억이란 고정된 파일이 아니라 매번 떠올릴 때마다 감정과 현재 상태의 영향을 받아.. 2026. 8. 17. 영화 트루먼 쇼 (세트장, 자유의지, 리얼리티)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의심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요. 1998년 개봉한 영화 를 처음 봤을 때는 탈출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떠올릴수록 오히려 더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들이 이 영화와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세트장인지 모르고 30년을 산다는 것트루먼 버뱅크는 태어난 순간부터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리얼리티 쇼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가 사는 씨헤이븐(Seahaven)은 달에서도 보인다는 초대형 돔형 세트장이고, 아내도 친구도 이웃도 전부 배우였습니다.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생방송된 쇼, 총감독 크리스토프(Christof)가 설계한 완벽한 세계였습니다.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놀랐던 건 탈출.. 2026. 8. 15. 영화 파벨만스 (카메라 시선, 편집 통제, 예술가 탄생) 스필버그는 《파벨만스》에서 단 한 번도 "영화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린 세미가 카메라를 들고, 찍고, 편집하는 과정 자체로 그것을 증명해 버립니다. 제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이 사람은 연출로 이미 다 말해버렸구나." 삶에서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을 영화라는 형식으로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 그 답을 찾고 싶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카메라 시선 — 찍는다는 것이 곧 바라본다는 것《파벨만스》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붙잡힌 개념은 '카메라 시선(camera gaze)'이었습니다. 여기서 카메라 시선이란 단순히 렌즈가 향하는 방향이 아니라, 감독이 세계를 어떤 맥락 속에 놓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 자체를 뜻합.. 2026. 8. 15. 영화 애프터 양 리뷰 (기억의 총합, 목적론, 미장센) 로봇이 죽으면 우리는 무엇을 잃는 걸까요. 영화 《애프터 양》을 처음 봤을 때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코고나다 감독의 2022년 작품으로, 망가진 안드로이드 양의 기억을 복원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기억과 삶의 본질을 조용하게 되묻는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 여운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총합이 곧 존재다 — 양의 아카이브와 목적론의 함정로봇은 기억이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바로 그 전제를 뒤집는 데서 출발합니다.영화 속 안드로이드 양은 하루에 몇 초짜리 영상들을 스스로 선택해 저장합니다. 이것을 영화에서는 아카이브(archive), 즉 기억 저장소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아카이브.. 2026. 8. 13.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