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처음엔 부모님이 그냥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딸을 25년 넘게 아무런 외부 치료 없이 집 안에서만 돌봐온 이야기인데, 단 3개월의 입원 치료만으로 누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는 장면을 보고 나면 솔직히 허탈함도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2024)는 그런 작품입니다. 쉽게 판단하게 두지 않는 영화였습니다.

조현병, 25년의 기록이 시작된 이유
감독 후지노 토모아키는 자신보다 여덟 살 위인 친누나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누나는 의대를 나올 만큼 총명했고, 학교에서도 활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24살이 되던 1983년, 조현병(schizophrenia) 증세가 처음 나타났습니다. 조현병이란 현실 인식, 사고, 감정, 언어 등 다양한 정신 기능이 복합적으로 무너지는 만성 정신질환으로, 망상이나 환청 같은 양성 증상과 감정 둔마 같은 음성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지만, 담당 의사는 "정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그 말을 믿었고, 이후 25년간 누나를 외부 치료 없이 가정 안에서 돌봤습니다. 동생은 어릴 때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 독립했고, 2001년에야 캠코더를 들고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년간 촬영한 영상이 이 다큐멘터리의 원재료입니다.
저도 이 시작 부분을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문 자체가 이미 1983년이라는 시대를 너무 가볍게 본 것이었습니다.
- 1983년 일본: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매우 강했던 시대
- 부모님 두 분 모두 의과대학 교수 출신 — 오히려 체면과 판단이 얽혀 더 복잡한 상황
- 담당 의사의 "정상" 판정이 부모님의 초기 대응 방향을 결정적으로 틀어버림
- 감독 본인도 공포와 무력감으로 독립 — 처음부터 완전한 방관자는 아니었음
가족 돌봄, 그 안에 있는 것들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흔들린 지점은 부모님의 태도였습니다. 처음에는 '왜 저렇게 안 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영상을 보면 부모님이 누나를 방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차려주고, 곁을 지키고, 밖에 못 나가게 자물쇠를 채운 것도 누나가 어디로 갈지 몰라서였습니다. 가족 돌봄(family caregiving)이란 의료 전문가가 아닌 가족 구성원이 만성 질환자를 일상에서 직접 보살피는 행위를 뜻하는데, 이 경우처럼 수십 년간 지속될 경우 돌봄 제공자 자신도 극심한 소진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출처: WHO 정신건강 팩트시트에 따르면, 전 세계 조현병 환자의 상당수가 가족의 비공식 돌봄에 의존하고 있으며, 적절한 치료와 지역사회 지원이 없을 경우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그 통계의 얼굴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어머니는 결국 치매(dementia) 증세를 겪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치매란 뇌 기능이 점진적으로 저하되면서 기억, 판단, 언어 능력이 감퇴하는 신경퇴행성 질환입니다. 누나의 조현병 증세가 심해지는 밤에 어머니도 혼자 앉아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이 제 경험상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이유로 현실과 멀어져 있는 그 방 안의 풍경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판단의 윤리, 우리는 얼마나 가볍게 말해왔나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결국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영화를 1시간 40분 동안 보고 나서 '저 부모님은 왜 그랬을까'라고 말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가벼운 판단일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도 감독이 초반에 명확하게 말합니다. "이건 누구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왜 조현병에 걸렸는지를 다루는 영화도 아니다"라고요.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영화 끝 무렵에야 느꼈습니다.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태도에 관해서라면,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생각납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는 기장의 판단이 잘못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인간이 그 긴박한 상황에서 반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영하자 비로소 최선의 선택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 과거의 선택을 평가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른 채 매 순간을 살아낸 사람의 선택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저도 평소에 누군가의 상황을 보면서 "그냥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고 쉽게 던진 말이 있었는지 돌아봤습니다. 이 가족의 이야기는 조현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실제로는 치매 환자를 모시는 가정이든,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든, 가까운 곳에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정책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의 가족 부양 부담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지역사회 기반 지원 체계의 확충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치료 부재를 완전히 정당화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판단도 조심스럽습니다. 결과적으로 3개월의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는 사실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왜 더 일찍 하지 않았냐"는 간단한 질문으로 이어지기까지는, 25년의 맥락이 훨씬 더 촘촘하게 있다는 것도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바입니다.
담담한 카메라가 더 깊이 남는 이유
제가 이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현병 증세를 다루는 장면들이 있지만, 감독은 그것을 충격적으로 소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장면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합니다. 자기 가족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감독의 역량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치료를 받기 전, 대화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의 누나에게 감독이 계속 말을 거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계속 다정하게 말을 걸고, 산책을 유도해보고, 뭔가 연결되려는 시도를 반복합니다. 그게 조용히 쌓이다 보면, 이 감독이 누나를 얼마나 애정하는지가 말 한마디보다 더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입원 치료 후 호전된 누나가 폐암 말기 진단을 받는 흐름도, 감독은 감상적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냥 같이 여행을 다니고, 누나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곁에 있는 장면들로 구성됩니다. 정서적 호소보다는 사실의 축적으로 관객을 움직이는 방식인데, 이런 다큐멘터리적 윤리(documentary ethics) — 즉 촬영 대상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려는 태도 — 를 이 작품이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감독이 아버지에게 이 영상을 외부에 공개해도 되겠냐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괜찮다고 답합니다. 그 짧은 대화가 이 작품 전체를 성립시키는 동의의 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참고로 이 다큐멘터리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OTT나 DVD 공개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떻게 해야 했을까,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현재 국내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다만 상영관 수가 많지 않아 사전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감독 측이 OTT나 DVD 공개 계획이 없다고 밝힌 만큼, 극장 상영 기간에 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Q. 조현병 증세가 자극적으로 나오지는 않나요? 보기 힘든 영화인가요?
A. 조현병 증상을 다루는 장면들이 있긴 하지만, 감독이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 절제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충격적인 장면보다는 일상의 단편들이 쌓이는 방식이라, 정서적으로 무겁긴 해도 자극적이라는 느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Q. 부모님을 비판하는 영화인가요, 이해하려는 영화인가요?
A. 감독 본인이 영화 초반에 "누구를 탓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명시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부모님을 일방적으로 비판하거나 옹호하지 않고,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상황을 쌓아갑니다.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더 오래 여운이 남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Q. 일본 다큐멘터리인데 한국에서 반응이 있나요?
A.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기준으로 1만 명 이상이면 성공으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 작품은 개봉 이후 6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규모가 작은 외국 다큐멘터리로는 상당한 수치입니다. 감독이 직접 방한해 GV(관객과의 대화)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결론
영화관을 나오고도 한참 동안 제목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질문에 저는 끝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게 이 작품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답을 주지 않고, 판단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보고 나면 자신이 평소에 타인의 상황을 얼마나 가볍게 재단해왔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조현병이나 가족 돌봄 문제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분들도, 이 작품을 통해 그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영 기간이 길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 관심이 있다면 지금 시간을 내보시는 쪽이 나을 것 같습니다. S등급 다큐멘터리라는 평가에 저도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