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26년 달력이 절반을 넘겼습니다. 연초에 개봉 예정작 목록을 보며 체크해뒀던 영화들을 지금 꼽아보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막상 극장에서 본 편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더라고요. 바쁜 일정 탓에 개봉 시기를 통째로 흘려보낸 작품이 여럿이었고, 나중에 OTT로 보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미루다 상영이 끝난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반기 라인업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건 정말 미루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월부터 12월까지, 한국과 할리우드를 가리지 않고 기다리던 작품들이 줄줄이 몰려오고 있으니까요.

7월~12월, 제가 달력에 표시해둔 기대작들
제가 올해 가장 오래 기다려온 작품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나홍진 감독의 <호프>입니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신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건인데, 이번엔 SF 장르로 돌아왔다는 점이 더 흥미롭습니다. 시골 마을에 기이한 존재가 출몰한다는 설정이 곡성의 문법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소식에 스케일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해집니다. 조인성, 황정민, 정호연에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까지 이름을 붙여놓은 캐스팅은 제가 직접 라인업을 읽으면서도 두 번 다시 확인했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7월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도 전 세계 동시 개봉합니다. 여기서 <오디세이>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트로이 전쟁 이후 오디세우스가 10년간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스크린으로 옮긴 신화 서사 블록버스터입니다.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앤 해서웨이, 로버트 패틴슨, 젠데이아, 샤를리즈 테론이 한 편에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극장 좌석을 예매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놀란 감독은 CG를 최소화한 실제 세트 촬영을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실제 세트 촬영이란 디지털로 배경을 합성하는 대신 물리적으로 공간을 구축해 배우가 실제 환경 안에서 연기하게 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그 방식으로 신화 속 폴리페무스나 마녀 키르케를 어떻게 구현할지, 제 경험상 놀란 영화는 예고편으로는 절반도 가늠이 안 됩니다.
7월 말에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네 번째 편 <브랜드 뉴 데이>도 개봉합니다. 3편 이후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진 피터 파커가 홀로서기에 도전하는 이야기인데, 샹치를 연출한 데스틴 대니얼 크레톤이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샹치에서 보여준 타격감 있는 액션 연출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액션 시퀀스만큼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0월에는 두 편이 나란히 눈에 들어옵니다. 먼저 톰 크루즈 주연의 <디거>. 버드맨과 레버넌트로 아카데미를 두 차례 석권한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에는 <소셜 레코닝>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셜 레코닝이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 후속편으로, 페이스북 내부 고발자 프랜시스 하우겐의 실화를 바탕으로 소셜 미디어의 이면을 파헤치는 스릴러입니다. 제레미 스트롱이 마크 저커버그를 새롭게 연기한다는 소식은 제가 처음 접했을 때 꽤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12월 18일은 사실상 올해 최대의 격전일입니다. <듄 파트 3>와 <어벤져스: 둠즈데이>가 같은 날 개봉합니다. 여기서 <듄 파트 3>는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 2권인 듄의 메시아를 각색한 작품으로, 황제로 즉위한 폴 아트레이드를 둘러싼 정치·종교적 후폭풍을 그립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시각적 밀도와 서사의 무게를 함께 끌고 가는 연출로 SF 장르의 기준을 새로 세운 인물인 만큼, 3부작의 완결이 어떤 무게로 마무리될지 제 경우엔 지금부터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리고 같은 날 마블의 둠즈데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복귀에 루소 형제 감독까지. 엔드게임 이후 마블이 조각조각 이어왔던 서사가 여기서 한 번 더 집결하는 셈인데, 마블이 오랜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할 작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 7월: 나홍진 감독 <호프>,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미니언즈 3>
- 8~9월: <인시디어스> 스핀오프(8월), <레지던트 이블> 전면 리부트(9월)
- 10월: 이냐리투 감독 <디거>, 핀처 계보 <소셜 레코닝>, 실사 <스트리트 파이터>
- 11~12월: <헝거게임> 프리퀄, 그레타 거윅의 <나니아>, <듄 파트 3>, <어벤져스: 둠즈데이>
몇 편을 봤느냐보다, 어떻게 고를 것이냐
상반기를 돌아보며 제가 느낀 건 한 가지였습니다. 개봉 당시 함께 반응을 나누는 경험과, 나중에 OTT에서 혼자 조용히 보는 경험은 분명히 다르게 남는다는 것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몰입 환경, 관객들과 공유하는 긴장감, 그리고 개봉 직후에만 형성되는 온라인 대화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가 상반기에 미룬 작품 중 몇 편은 OTT로 결국 봤지만, 보고 나서도 무언가 빠진 느낌이 남았습니다.
영화 트렌드를 분석하는 시각에서 보면 올해 개봉작들에는 뚜렷한 패턴이 있습니다. 먼저 IP 기반 콘텐츠, 즉 이미 검증된 원작이나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습니다. IP란 지식 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의 약자로, 영화 산업에서는 원작 소설·게임·기존 영화 시리즈처럼 이미 팬층이 형성된 콘텐츠를 활용해 투자 리스크를 낮추는 전략을 가리킵니다. <스파이더맨>, <듄>, <헝거게임>, <나니아>, <스트리트 파이터>, <토이 스토리 5>까지, OTT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극장 개봉의 투자 리스크가 커졌고, 배급사 입장에선 검증된 IP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입니다. 출처: Box Office Mojo의 연도별 흥행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 경향은 2022년 이후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하나, SF 장르의 비중이 뚜렷이 늘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호프>, <오디세이>, <듄 파트 3>처럼 거대한 스케일의 SF 작품들이 올해 특히 집중된 것은 AI와 우주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영화 산업에도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BIS) 통계에서도 국내 관객의 SF 장르 선호도는 팬데믹 이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한 해의 영화를 제대로 즐겼다는 기준이 관람 편수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5편의 기대작 목록을 펼쳐놓고 의무감으로 체크박스를 채우다 보면 오히려 감상 자체가 피로해집니다. 중요한 건 그해 사회가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를 영화를 통해 함께 감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AI가 사법 시스템을 장악한 세계를 다루는 작품, 소셜 미디어의 내부 고발을 담은 작품, 외계 존재와 마주하는 한국 시골 마을의 이야기. 이것들은 모두 지금 이 시기에만 나올 수 있는 영화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반기에는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제가 진짜 궁금한 세 편,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끌리는 한 편을 더해서 극장에서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작품 수를 채우는 게 아니라, 지금의 저를 가장 설레게 하는 영화를 제때 보는 것. 상반기에 흘려보낸 아쉬움이 이 방향을 정하게 해줬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2026년 하반기 한국 영화 중 가장 기대작은 뭔가요?
A. 제가 직접 달력에 표시해둔 건 나홍진 감독의 <호프>입니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에 이번엔 SF 장르까지 더해졌고,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기대작을 넘어 한국 영화 산업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조인성, 황정민,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한 편에 모인 캐스팅은 제 경험상 보기 드문 일입니다.
Q. 크리스토퍼 놀란 <오디세이>는 어떤 내용인가요?
A.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10년에 걸쳐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그립니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 마녀 키르케 등 그리스 신화 속 존재들과의 대결이 펼쳐지며, 놀란 감독 특유의 CG 최소화 실제 세트 촬영 방식으로 제작됐습니다. 7월 17일 전 세계 동시 개봉 예정입니다.
Q. <어벤져스: 둠즈데이>랑 <듄 파트 3>가 같은 날 개봉하면 뭘 먼저 봐야 하나요?
A.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일정이었습니다. 둘 다 12월 18일 개봉으로, 각각 마블과 SF 서사 팬들의 핵심 기대작입니다. 제 경우엔 <듄> 1, 2편을 극장에서 모두 봤기 때문에 완결편을 우선 챙길 생각이지만, 어벤져스는 루소 형제 복귀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재등장이라는 이벤트성이 강해서 개봉 주에 함께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것 같습니다.
Q. 그레타 거윅의 <나니아>는 넷플릭스로도 볼 수 있나요?
A. 네, 아이맥스 극장 개봉 이후 넷플릭스에서도 공개될 예정입니다. 다만 그레타 거윅 감독이 바비에서 보여준 색채와 공간 구성을 생각하면, 나니아의 비주얼만큼은 가능하다면 극장에서 먼저 보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판타지 장르는 화면 크기 차이가 몰입에 꽤 큰 영향을 줍니다.
결론
상반기 내내 미루다 흘려보낸 영화들을 떠올릴 때마다, 다음엔 좀 더 부지런히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하반기 라인업을 정리하고 보니 이번엔 그냥 지나치기가 정말 어렵겠다 싶었습니다. <호프>, <오디세이>, <듄 파트 3>, <어벤져스: 둠즈데이>처럼 스케일 면에서 극장 경험이 필수인 작품들이 7월부터 12월까지 고르게 포진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기대작을 빠짐없이 보겠다는 계획보다는, 지금 이 시기에 가장 보고 싶은 작품 몇 편을 미리 골라 개봉일을 확인해두는 것이 훨씬 실용적입니다. 나중에 OTT에서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속 미루다 보면, 결국 개봉 당시의 공기 속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놓치게 됩니다. 남은 2026년, 제가 목표로 삼은 건 단 네 편입니다. 그 네 편만큼은 제때, 극장에서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