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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알베르 카뮈 (부조리, 이방인, 페스트)

by hoziii 2026. 8. 22.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충분히 슬펐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꽤 오래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처럼 느꼈습니다. 나중에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 그 감각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카뮈는 삶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방인>과 <페스트>를 이어서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뫼르소가 불편했던 이유 — 부조리와 이방인

카뮈가 29살에 발표한 <이방인>은 프랑스 문단에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다음 날 여자친구와 해수욕을 즐깁니다.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제대로 된 반성을 보이지 않죠. 결국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데, 정작 그 판결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살인 그 자체보다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아들"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저도 꽤 불편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뫼르소를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았거든요. 소설을 1인칭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고 있다는 게 분명히 보입니다. 다만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기서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absurdity)가 등장합니다. 부조리란 인간이 세계에 어떤 의미나 질서를 기대하지만, 세계는 끝내 그 기대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불일치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삶에는 본래 정해진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입니다. 카뮈는 이 개념을 에세이 <시지프 신화>(출처: Éditions Gallimard)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는데, <이방인>은 그것을 소설의 언어로 옮긴 작품입니다.

<이방인>을 "부정(否定)"의 소설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설명이 완전하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뫼르소는 끝에 가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이라는 확실한 사실 앞에서 처음으로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감옥에서 신부가 찾아와 기도를 권할 때, 뫼르소는 그 위로를 거부하고 "죽으면 다 끝"이라고 소리칩니다. 이것은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집착처럼 읽혔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와 자주 함께 묶이는 카뮈이지만, 카뮈 본인은 이 분류를 거부했습니다. 실존주의가 부조리 이후에 어떤 의미 체계로 뛰어오르려 한다면, 카뮈는 그 뛰어오름 자체를 거부하고 부조리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제가 이 차이를 처음 이해했을 때, 카뮈가 단순히 허무주의자라는 인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뫼르소의 "무심함"은 악의가 아니라 사회적 감정 코드와의 불일치에서 비롯됩니다
  • 부조리는 세계가 무의미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과 침묵하는 세계 사이의 긴장입니다
  • 카뮈는 실존주의자로 분류되길 거부했고, 부조리를 넘어서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탐구했습니다
  • 뫼르소는 사형을 앞두고 처음으로 삶을 강렬하게 의식하는데, 이것이 소설의 핵심 반전입니다
요약: <이방인>의 뫼르소는 감정을 사회가 요구하는 형식으로 표현하지 않아 사형까지 받지만, 카뮈는 그를 통해 부조리한 세계에서도 삶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그려냅니다.

 

페스트 앞에서 성실하다는 것 — 연대와 윤리

카뮈가 직접 "부정 → 긍정 → 사랑"이라는 3단계 청사진을 말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페스트>는 그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합니다. 저는 이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이방인>이 부정이라는 게 조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읽어봤는데, <이방인>의 뫼르소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삶에 정직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페스트>를 읽을 때는 긍정이라는 단어를 너무 낙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1940년대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 쥐들이 죽어 나오기 시작하고, 의사 리외만이 이것이 페스트(pest, 흑사병)의 전조임을 직감합니다. 페스트는 중세 유럽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적인 전염병으로, 소설에서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재난과 죽음의 은유로 사용됩니다. 도시가 봉쇄되고 사람들은 극한의 공포와 마주합니다.

이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반응이 무척 현실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다는 이야기는 절반만 맞습니다. 기자 랑베르는 "나는 이 도시와 관계없다"며 탈출을 시도하고, 코타르는 평소 아웃사이더였다가 재난이 만들어낸 연대감 속에서 오히려 소속감을 느끼며 페스트가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카뮈는 이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간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 남은 인물은 역시 의사 리외입니다. 그는 거창한 영웅심으로 움직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아픈 아내와 노모를 두고, 치료가 되지도 않는 환자들 곁에서 날마다 피로와 절망을 견딥니다. 인류애(humanisme)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한데, 이것은 신이나 이념이 아닌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와 연대를 뜻합니다. 리외의 선택은 거창한 이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아주 구체적인 결심입니다.
<br">카뮈 연구자들은 <페스트>가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즉 2차 세계대전을 우의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출처: Le Monde). 전염병은 파시즘이고, 봉쇄된 도시는 점령당한 사회입니다. 그렇다면 리외의 성실함은 단순한 직업 윤리가 아니라 불의한 체제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저항의 형식인 셈입니다.

제 경우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뒤에야 행동하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사치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리외는 페스트를 이해하거나 극복하기보다 그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합니다. 카뮈가 말하는 연대(solidarité)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권태와 피로 속에서도 다른 사람 곁에 머무는 작은 결심들의 반복.

요약: <페스트>는 부조리한 재난 앞에서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서도 자신의 일을 계속하는 성실함과 연대가 가장 현실적인 윤리임을 보여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카뮈를 처음 읽는다면 <이방인>과 <페스트> 중 어느 것부터 읽는 게 좋을까요?

A. <이방인>부터 읽는 것을 권하는 편입니다. 분량도 짧고 카뮈의 핵심 질문인 부조리와 죽음의 문제가 가장 압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한 뒤 <페스트>로 넘어가면, 카뮈가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려 했는지 훨씬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읽어도 나쁘진 않지만, 연결 고리가 덜 보일 수 있습니다.

 

Q. 카뮈가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요? 사르트르랑 다른 게 뭔가요?

A. 카뮈와 사르트르는 동시대에 활동하며 교류했지만, 카뮈는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실존주의가 부조리한 현실을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 체계를 구성하려 한다면, 카뮈는 그 뛰어오름 자체를 거부하고 부조리를 그대로 안고 살아가는 것이 정직한 태도라고 보았습니다. 이 차이로 두 사람은 1950년대에 공개적으로 결별하기도 했습니다.

 

Q. <페스트>의 코타르는 왜 재난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건가요?

A. 코타르는 원래 사회에서 고립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페스트라는 위기가 터지자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불안하고 두려운 처지가 되면서, 그는 처음으로 공동체에 소속된 느낌을 받습니다. 재난이 끝나면 자신은 다시 고립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묘한 심리가 생기는 것이죠. 카뮈가 이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위기 속 연대가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 위에 서 있는지였다고 생각합니다.

 

Q.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탄 게 언제인가요? 수상 이후 어떻게 됐나요?

A. 카뮈는 1957년, 44살의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두 번째로 젊은 나이였습니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부정, 긍정, 사랑"의 3단계로 설명했지만, 마지막 단계인 사랑에 해당하는 작품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1960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수상 3년 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습니다.

 

결론

카뮈를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감각은 의외로 따뜻함이었습니다.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작가에게서 따뜻함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카뮈는 삶이 허무하다고 말하면서도 그래서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세계가 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방인>에서 부조리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페스트>에서 그 부조리 안에서 연대와 성실함이라는 구체적인 답을 꺼냅니다. 카뮈가 완성하지 못한 세 번째 단계인 사랑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가끔 생각합니다. 다 쓰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지만, 지금 남아있는 두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긴 질문이 됩니다. 카뮈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이방인>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V__N5mvqK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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