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을 나서면서 운전대를 잡는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습니다. 두 시간 넘게 레이싱카 굉음 속에 앉아 있었던 탓인지,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내내 속도감이 몸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F1 경기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닌데도 그랬습니다. 〈F1 더 무비〉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속도감 — 이 영화, 진짜로 빠릅니다
레이싱 영화를 보기 전에 흔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차피 TV 중계로도 레이스는 볼 수 있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실제 F1 중계는 기본적으로 관찰자 시점으로 구성됩니다. 트랙 위를 달리는 차량을 멀리서, 혹은 차량 위에 부착된 온보드 카메라로 보여 주는 방식이죠. 여기서 온보드 카메라(On-board Camera)란 차량 본체에 고정 장착된 카메라를 뜻합니다. 중계 화면에서 간간이 나오는 그 시점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수준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레이싱카 12대를 동원했고, 한 대당 평균 9,000km를 실제로 달렸다고 합니다. 제가 1년 동안 제 차로 다닌 거리가 8,000km 남짓인데, 한 대당 그 이상을 찍기 위해 달린 셈입니다. 차량 곳곳에 경량 카메라를 여러 대 부착했고, 특정 장면에서는 촬영을 위한 전용 카메라 장비를 새로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제가 스크린에서 본 장면이었습니다. 오른쪽 바퀴를 눈높이에서 아주 가깝게 잡다가 카메라가 팬(Pan)하면서 끊김 없이 차량 옆면 전체를 보여 주는 쇼트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팬이란 카메라를 고정한 채 좌우로 회전시켜 화각을 이동하는 촬영 기법입니다. 레이싱 영화에서 이런 방식으로 바퀴를 담은 장면은 제가 본 영화 중에 처음이었습니다. 1970년대 말 〈매드맥스〉 이후로 차량 근접 촬영의 강렬함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술적으로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진화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아이맥스(IMAX) 규격으로 상당 부분을 촬영했습니다. 아이맥스란 일반 35mm 필름보다 훨씬 큰 화면 비율과 해상도로 촬영·상영하는 대형 포맷 시스템입니다. 〈포드 v 페라리〉나 〈러시: 더 라이벌〉은 이 포맷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차이가 체감 속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습니다. F1 측이 촬영에 적극 협조하면서 일반 관객은 물론 실제 F1 팬들도 보기 어려운 앵글을 영화 안에 담을 수 있었다는 점도 컸습니다.
- 레이싱카 12대 동원, 차 1대당 평균 9,000km 실제 주행 촬영
- 경량 카메라 다수 부착 + 전용 촬영 장비 개발
- 아이맥스(IMAX) 포맷 촬영으로 역대 레이싱 영화 대비 압도적 화면 크기
- F1 공식 협조로 중계에서도 볼 수 없던 앵글 확보
사운드 — 속도는 귀로도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영화의 속도감은 시각적 편집에서 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빠른 컷 전환, 좁은 앵글, 클로즈업.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조금 달랐습니다. 화면을 잠깐 눈 감고 소리만 들어도 차가 빠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음악을 맡은 사람은 한스 짐머입니다. 사실 그의 이름을 들으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스타일이 떠오릅니다. 〈다크 나이트〉에서 압박감을 조여 오던 그 질감, 〈인터스텔라〉에서 감정을 극대화하던 그 방식. 한스 짐머는 〈러시: 더 라이벌〉과 〈분노의 질주〉에서도 레이싱 영화 음악을 담당한 바 있으니,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레이싱 영화 작업입니다.
이 영화에서 한스 짐머가 택한 방식은 엔진음을 음악의 리듬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레이싱카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는 소리를 음악의 일부처럼 배치해서, 차가 가속하는 순간 음악도 함께 고조됩니다. 그 결과 피트(Pit) 구간에서 차가 멈추는 순간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피트(Pit)란 F1 경기 중 타이어 교체나 차량 수리를 위해 차량이 잠시 진입하는 전용 구역을 뜻합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순간인데, 음악이 그 긴장감을 그대로 유지시켜 줬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레이싱 장면이 볼거리겠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사운드 설계가 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만들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 음악이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속도 자체를 증폭시키는 도구로 쓰인 경우였습니다. 제가 본 레이싱 영화 중에서 음향 면에서 가장 공들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 약속한 것은 준다, 그 이상은 없다
스토리에 관해서는 좀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서사 구조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인 컨벤션을 거의 그대로 따릅니다. 컨벤션(Convention)이란 특정 장르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관습적 설정과 전개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이 장르라면 이 장면이 나온다"고 관객이 이미 예측하는 틀입니다.
주인공 소니는 과거 촉망받던 레이서였으나 1993년 사고 이후 내리막을 걸으면서, 도박 파산과 두 번의 이혼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에게 오랜 친구 루벤이 F1 복귀를 제안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건방지지만 재능 있는 신예 조슈아가 같은 팀 드라이버로 합류합니다. 이 둘이 충돌하고, 갈등하고, 결국 서로를 인정하는 구조는 버디 무비(Buddy Movie)의 고전 공식입니다. 버디 무비란 성격이 다른 두 인물이 짝을 이뤄 갈등과 협력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장르 형식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그 공식을 살짝 비튼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버디 무비에서는 신참이 루키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거꾸로 오래된 베테랑 소니가 30년 만에 F1으로 돌아온 '새 멤버'고, 젊은 조슈아가 팀의 에이스입니다. 소니가 포메이션 랩(Formation Lap), 즉 레이스 시작 전 트랙을 한 바퀴 돌며 타이어와 차량 시스템을 예열하는 구간에서 혼자 출발을 못 하는 장면도 처음엔 실수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타이어를 더 충분히 예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식의 반전이 곳곳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알고 보니 전략이었다' 구조가 반복되면서 소니라는 캐릭터가 가장 살아 있는 순간을 만들어 냈습니다.
다만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루벤은 아쉬웠습니다. 현재 가장 뛰어난 배우 중 하나가 맡은 역할치고는 기능적인 역할에 머물렀습니다. 로맨스 전개나 갈등 해소 방식도 예상한 대로 흘러갔습니다. 이 영화가 약속한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각본이었습니다. 〈포드 v 페라리〉(출처: IMDb)나 〈러시: 더 라이벌〉처럼 트랙 밖 인물 묘사에서도 밀도 높은 서사를 원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에서 그 부분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그럼에도 러닝타임 약 두 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 라스베이거스, 아부다비 그랑프리까지 세계 각지를 배경으로 쉼 없이 전개되는 구성이 007 시리즈처럼 시각적 풍요로움을 더해 줬고, 해설이 필요한 장면에서도 화면이 멈추지 않아 F1을 모르는 관객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소프트 타이어와 하드 타이어의 전략적 차이, 인터미디어 타이어(Intermediate Tyre)처럼 비가 올 때 쓰는 중간 단계 타이어까지 영화 흐름 안에서 설명되는 방식이 꽤 친절했습니다. 제가 F1을 거의 몰랐는데도 경기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해됐습니다. 출처: Formula 1 공식
자주 묻는 질문
Q. F1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가 직접 봤는데, F1 경기를 거의 몰라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소프트·하드·인터미디어 타이어의 차이, 피트 전략의 중요성 같은 개념들이 경기 장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규칙을 외우고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Q. 탑건: 매버릭과 비슷한 느낌인가요?
A. 같은 감독(조셉 코신스키)과 같은 프로듀서(제리 브룩하이머)가 만든 만큼, 현장감과 이입감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거의 동일합니다. 탑건에서 전투기를 탄 것 같은 느낌을 준 방식을 레이싱카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 보면 됩니다. 다만 스토리의 깊이보다는 감각적 체험을 앞세운다는 점에서도 성격이 비슷합니다.
Q. 포드 v 페라리, 러시: 더 라이벌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낫나요?
A. 단순히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 어렵고, 목적이 다른 영화입니다. 〈포드 v 페라리〉나 〈러시: 더 라이벌〉은 트랙 밖 인물 묘사와 실화 기반 서사가 충실한 반면, 〈F1 더 무비〉는 시각·청각적 쾌감에 집중합니다. 복잡한 감정선보다 강렬한 레이싱 체험을 원한다면 이 영화가 더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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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볼 필요가 있나요?
A. 가능하다면 아이맥스 상영관을 강하게 권합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의 속도감과 사운드는 화면 크기와 음향 시설에 크게 좌우됩니다. 일반 상영관에서도 재미있겠지만, 아이맥스로 찍은 장면들은 큰 화면에서 봐야 체감 차이가 확실합니다.
결론
정리하면, 〈F1 더 무비〉는 약속한 것을 정확하게 지키는 영화입니다. 포스터와 라인업을 보고 상상한 것 그대로를 스크린에서 돌려줍니다. 각본이 뛰어나다거나 예상을 깨는 서사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이맥스 카메라로 담아낸 속도감, 한스 짐머의 음악이 엔진음과 맞물려 만드는 사운드, 브래드 피트가 직접 레이싱카를 몰며 만들어 낸 이입감은 이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운전대에 손이 갔던 것은 이 영화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사의 깊이를 원한다면 〈포드 v 페라리〉나 〈러시: 더 라이벌〉을 먼저 보시고, 여름 한복판에 온몸으로 속도를 맛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큰 화면에서 보는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