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다 말해줘, 숨기지 말고"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면,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04년 개봉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클로저』는 처음 봤을 때 단순히 불륜 멜로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볼수록 사랑 안에 숨어 있는 소유욕과 진실 강요의 민낯을 드러내는 영화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던 작품입니다.

낯선 사람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순간 — 스트레인저의 역설
영화는 런던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댄과 앨리스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앨리스가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댄이 다정하게 병원까지 데려다주면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일반적으로 로맨틱 멜로 영화는 이 지점에서 "이 둘은 운명이구나"라는 감상을 불러일으키는데, 저는 다시 봤을 때 이미 이 첫 장면에서 뭔가 어긋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제목 『클로저』는 단순히 "더 가까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극 중 인물들은 헬라어 "스트레인저(Stranger)", 즉 낯선 사람이라는 인사말로 서로를 처음 부릅니다. 여기서 스트레인저란 완전히 모르는 타인, 즉 상대의 민낯을 아직 보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네 사람은 이 낯선 설렘에서 클로저, 가장 가까운 관계로 나아가지만, 역설적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낯선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이 구조가 설득력 있다고 느낀 이유는, 실제로 연애를 하다 보면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 상대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댄은 소설가로 성공한 뒤에도 앨리스가 곁에 있는 사이 사진작가 안나에게 눈을 돌립니다. 안정적인 관계, 즉 클로저가 생겨나는 순간 낯선 스트레인저에게 다시 끌리는 구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 패턴은 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래리는 결혼 생활 중 출장에서 불륜을 저질렀고, 안나는 1년 동안 남편을 배신하며 댄과의 만남을 지속했습니다.
- 댄 — 낯선 관계에서만 진심을 느끼는 자기중심적 사랑
- 앨리스 — 일방적 헌신과 거짓말로 사랑을 유지하려는 희생형 사랑
- 안나 —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자기 파괴적 사랑
- 래리 — 타협과 대상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소유형 사랑
네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정의하고 있었고, 그래서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를 처음 볼 때는 단순히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다시 보니 이 중 한 명도 완전히 나쁘다고 단정 짓기 어려웠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진실을 요구할수록 관계는 망가진다 — 진실의 폭력
『클로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래리와 안나, 혹은 댄과 앨리스가 "다 말해줘"를 반복하는 장면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솔직함은 미덕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진실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봤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합니다. 래리는 안나에게 댄과의 관계를 낱낱이 묻고, 댄은 앨리스에게 래리와 있었던 일을 캐묻습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연결됩니다. 카타르시스란 감정의 정화, 즉 억눌린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심리적 해방감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진실을 알게 된 뒤 카타르시스를 얻기는커녕, 오히려 그 진실을 무기 삼아 상대를 무너뜨립니다. 솔직하다는 것이 상대에게 폭력이 되는 순간을 영화는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래리가 댄에게 안나와의 잠자리를 세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래리는 자신도 상처받았음에도 그 고통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가장 잔인하게 할 수 있는 진실을 선택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불편했던 이유는 저도 연애를 하면서 "다 알고 싶다"는 욕구가 사실은 상대를 통제하고 싶은 욕망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진실을 다 알고 나서 행복해진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상대의 모든 것을 알려는 강박을 병적 질투(Morbid Jealousy)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병적 질투란 근거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상대의 불성실을 의심하고 증거를 수집하려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래리의 행동은 이 패턴에 상당히 가깝습니다. 그는 진실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원하는 건 상대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고, 진실은 그 수단이었을 뿐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서도 질투와 관계 통제 욕구 사이의 연관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솔직한 거짓말쟁이 — 앨리스의 정체와 아이러니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앨리스가 사실은 제인 존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결말이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네 명 중 가장 감정에 진실했던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은 영화 전체를 다시 읽게 만들었습니다.
앨리스, 즉 제인은 처음 런던 추모공원에서 앨리스 아이레스라는 타일을 발견했습니다. 앨리스 아이레스는 실제로 화재 속에서 세 아이를 구하고 숨진 의인의 이름입니다. 제인은 미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순간, 더 숭고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스트리퍼였던 제인에게, 앨리스라는 이름은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의 표상이었던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정체성 투영(Identity Projection)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정체성 투영이란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정체성을 현실에 겹쳐 씌우는 심리적 기제를 의미합니다. 제인이 앨리스가 되려 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서사 재구성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름을 빌린 그녀가 네 명 중 가장 감정에 솔직했습니다. 출처: IMDb 클로저(2004)에 따르면 이 영화는 패트릭 마버의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하며, 원작에서도 앨리스의 정체성 문제는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앨리스가 래리와 잠자리를 했다는 고백도 거짓말이었다고 봅니다. 래리는 앨리스에게 돈을 뿌리고 윽박질렀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잠자리를 했다는 앨리스의 말은 실제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이는 댄이 진실을 강요하는 방식에 환멸을 느끼면서,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택한 마지막 거짓말에 가까웠다고 느꼈습니다. 제 경우엔, 이 장면을 처음 볼 때는 앨리스가 진짜 그랬구나 싶었는데, 두 번째 볼 때는 그녀의 표정과 맥락이 완전히 다르게 읽혔습니다.
영화 마지막, 이제는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뉴욕 길을 걷는 제인의 모습은 데미안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와 함께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 역할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을 만큼, 앨리스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클로저에서 앨리스는 진짜 래리랑 잠자리를 한 건가요?
A. 이 부분은 영화 안에서 명확하게 답을 주지 않습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앨리스가 거짓말을 했다고 봅니다. 래리는 앨리스에게 실제로 매우 무례하게 대했고, 친절해서 응했다는 앨리스의 말은 상황과 맞지 않습니다. 래리의 사랑 방식인 타협과 조작을 파악한 앨리스가, 댄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거짓말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Q. 클로저 영화 제목이 무슨 뜻인가요?
A. '클로저(Closer)'는 "더 가까운"이라는 의미입니다. 영화는 낯선 사람(Stranger)으로 만나 가장 가까운 사람(Closer)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역설적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낯선 상대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가까움이 오히려 거리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이 영화의 본질적인 아이러니입니다.
Q. 클로저에서 앨리스의 본명이 왜 제인인가요?
A. 제인은 런던의 추모공원에서 화재 속에 세 아이를 구하고 숨진 의인 '앨리스 아이레스'의 이름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미국을 떠나 새 출발을 원했던 제인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빌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댄이 추모공원에서 그 타일을 발견하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Q. 클로저는 결말이 어떻게 되나요?
A. 앨리스(제인)는 댄을 떠나 혼자 미국으로 돌아가고, 안나와 래리는 다시 함께 살지만 공허한 관계가 됩니다. 댄은 앨리스를 잊지 못해 추모공원을 찾고, 그곳에서 앨리스 아이레스라는 타일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아무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고 뉴욕 길을 걷는 제인의 모습으로 끝나며, 사랑이 끝났다는 슬픔보다 서로를 끝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허무함을 남깁니다.
결론
『클로저』는 사랑의 정답을 알려주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를 소유하고 진실을 무기로 삼는지를 불편할 만큼 정직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몇 번 다시 봤는데, 볼 때마다 제 과거 연애에서 댄과 비슷한 순간들이 떠올라 부끄러워졌습니다.
사랑이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이 영화가 위로보다는 질문을 안겨줄 것입니다. 상대 자체를 사랑했는지, 나를 사랑해주는 상대의 모습을 좋아했는지, 아니면 그저 낯선 설렘을 원했는지를 스스로 물어보게 됩니다. 제 한 줄 평은 이렇습니다. "잡고 싶지만,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낯선 이의 이야기." 나탈리 포트만, 주드 로, 줄리아 로버츠, 클라이브 오웬의 연기가 이 불편한 진실을 더욱 날카롭게 전달합니다. 가능하다면 한 번 보고 끝내지 말고, 두 번 이상 보시길 권합니다. 두 번째 볼 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