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없이 들어간 영화관에서 오히려 더 많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딱 그랬습니다. 원작 소설과 프랑스판 리메이크까지 이미 접한 상태였던 터라 솔직히 새로울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예상과 전혀 다른 지점에서 자꾸 멈추게 됐습니다. 이 글은 영화가 왜 호불호가 갈리는지, 그리고 장면 곳곳에 깔린 상징들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제가 느낀 대로 풀어본 기록입니다.

시각적 연출과 호불호 원인 — 왜 이 영화는 갈리는가
영화관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나오는 순간, 제가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화면이었습니다. 색감이 굉장히 선명하고 일관됩니다. 제지 회사라는 공간적 배경에서 출발해서, 의상·소품·차량까지 모두 종이가 주는 그 레트로한 톤으로 맞춰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는데,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밖에서 준비되는 모든 시각 요소 — 조명, 배우 위치, 세트, 의상 — 를 통해 화면 안에 의미를 채우는 연출 방식을 말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미장센을 '종이'라는 단일 감각으로 통일했고, 그 결과 영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레트로 질감으로 읽힙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단순히 예쁜 화면을 만들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 자체가 낡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먼저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공간 안에서 인물이 프레임에 놓이는 방식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공 만수가 점점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는 구도라든지, 가족이 한 화면에 잡혀도 각자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배치 같은 부분은 대사 없이도 관계의 균열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관람 후기를 보면 평가가 꽤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가 집계한 관람객 평점 분포를 보면, 10점 만점 응답과 4점 이하 응답이 동시에 상위권에 몰려 있는 특이한 패턴을 보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제 생각에 호불호가 갈리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 설정의 극단성: 취업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전제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는 —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를 풍자와 웃음의 도구로 삼는 장르입니다 — 장르 문법을 미리 알고 있어야 설정 자체를 납득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 시대 배경의 충돌: 원작은 1996년 작품으로 CCTV와 디지털 추적망이 거의 없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반면 이 영화는 2020년대 한국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만수의 허술한 범행 계획이 현실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는 의문이 자꾸 끼어듭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자주 멈칫했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 과장된 연기 톤: 배우들의 말투와 행동이 일상적인 드라마와 다르게 과장된 층위에서 움직입니다. 이것이 블랙 코미디의 의도적 선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재미가 배가되지만, 그 톤을 낯설게 느끼면 집중력이 흩어집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선호하는 저로서는 설정 변경이나 현지화 과정에서 생긴 구멍들이 눈에 밟혔는데,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가 그 간격을 상당 부분 메워줬습니다. 이병헌, 이성민, 염혜란이 초반 코믹한 분위기를 끌어가고, 중반 이후 손혜진과 이병헌이 주고받는 감정선은 장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상징 분석 — 이름, 뱀, 첼로가 말하는 것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상징적 장치가 밀도 있게 깔려 있어서, 이걸 쫓다가 전체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저는 오히려 일단 흐름에 몸을 맡기고, 두 번째 볼 때 상징을 역추적하는 방식이 이 감독 영화를 즐기는 데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래에 정리한 내용은 관람 후에 되새길 때 참고할 해석입니다.
먼저 인물의 이름입니다. 주인공 '만수'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입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핵심인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연속 살인을 저지른다는 설정의 공포를 이름부터 준비합니다. 아내 '미례'는 "미리 대비한다"는 어감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고, 그 치밀함이 결국 남편의 범죄를 덮는 데 쓰입니다. 경쟁자 '고시조'는 시조(始祖), 즉 뿌리와 근본을 뜻하는 말로 읽히는데 — 사과나무 아래 묻힌다는 결말을 생각하면 이름이 그대로 운명을 예고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선출'은 만수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먼저 뽑혀 앉아 있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처럼 들립니다.
뱀 장면과 자기합리화의 구조
영화 속 뱀 장면은 단순한 스릴 요소가 아닙니다. 이아라가 뱀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겁을 내는 모습, 만수 역시 불안에 차서 손바닥에 말을 적고 얼굴을 두드리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모습은 둘 다 본질적으로 겁 많고 허술한 인물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허술한 인물들이 막상 시체를 처리하고 증거를 지울 때는 냉정하고 치밀합니다. 이 모순이 뱀이 등장하는 장면과 겹치면서, 겉으로는 무해해 보여도 순간 독을 쓰는 뱀의 속성을 두 인물에게 투영한 것으로 읽힙니다.
자기합리화(self-rationalization) —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재해석하는 심리 방어 기제입니다 — 는 이 영화의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버크의 독백으로 그 과정이 서술됐다면, 영화에서는 만수가 얼굴을 두드리며 "어쩔 수가 없다"를 반복하는 행동으로 시각화됩니다. 흥미로운 건 선출을 제거하는 마지막 살인 장면 이후로 만수가 더 이상 손바닥에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불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불안을 느끼지 못할 만큼 완성형 괴물이 된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봤을 때 웃어야 할 상황이 아닌데 웃음이 나왔고,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섬뜩했습니다.
딸 리원이 마지막에 강아지들에게 먼저 첼로 연주를 들려주는 장면도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리원은 — ASD란 사회적 상호작용과 소통 방식이 신경전형인과 다르게 나타나는 발달적 특성을 말합니다 — 가족이 아닌 순수한 존재 앞에서만 자신의 완성을 드러냅니다.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어쩔 수 없었다"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위한 합리화였던 것과 달리, 리원의 "어쩔 수 없음"은 자기만의 세계를 완성하려는 순수한 충동에서 비롯됩니다. 감독이 이 대비를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박찬욱 감독 필모그래피 분석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되듯, 그의 영화에서 "순수한 인물"은 언제나 가장 위험한 세계 안에서 가장 무너지지 않는 존재로 배치됩니다(출처: 한국영상자료원).
<br">마지막에 강아지가 사과나무 아래를 파려 하는 장면, 그리고 리원의 대사 "벌레가 끌어가지고 다 죽어가더라"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가족의 일상이 이미 썩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란히 말해줍니다. 빛보다 어둠을 선택한 결과가 당장은 성공처럼 보여도, 그 뿌리는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이 영화가 블랙 코미디의 외피 안에 감춘 진짜 이야기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어쩔 수가 없다』 원작 소설이나 프랑스 영화를 꼭 먼저 봐야 하나요?
A. 제 경험상 먼저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원작을 모르고 가면 설정의 극단성을 그냥 블랙 코미디의 과장으로 받아들이게 돼서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원작을 먼저 접한 저는 두 작품 사이의 차이가 자꾸 걸려서 몰입이 중간중간 끊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Q. 호불호가 심하다던데 어떤 분께 추천할 수 있나요?
A. 박찬욱 감독 특유의 시각적 완성도에 가치를 두거나, 블랙 코미디 장르 자체를 즐기는 분께는 충분히 권할 만합니다. 반면 현실적인 개연성과 촘촘한 심리 묘사를 우선시하는 분이라면 설정 허점에서 자꾸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르 문법을 미리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관람 만족도가 꽤 달라집니다.
Q. 딸 리원 캐릭터는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로 설정된 건가요?
A. 영화 안에서 직접적으로 진단명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리원의 행동 양식과 소통 방식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의 특성으로 묘사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설정이 단순한 소재 활용이 아니라, 거짓과 합리화로 얼룩진 가족 안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로 기능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입니다.
Q. 만수가 마지막 살인 이후 손바닥에 아무것도 안 적는 이유가 뭔가요?
A. 손바닥에 말을 적는 행위는 불안과 겁 때문에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장치였습니다. 선출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과 이전 범행을 통해 완전히 치밀해진 만수에게 그 불안이 사라진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불안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만큼 범죄가 자연스러워진 상태 — 괴물로의 완성 — 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장치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결론
『어쩔 수가 없다』는 설정의 허점과 현실적 개연성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게 만드는 두 가지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 특유의 시각적 일관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들이 점점 "어쩔 수가 없었다"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달라져가는 과정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화려한 장면이 아니라, 강아지가 사과나무 아래를 파려는 그 짧은 컷이었습니다.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고 박찬욱 감독의 연출 방식에 흥미를 느낀다면 충분히 볼 만한 작품입니다. 단, 현실감보다 상징과 시각 언어를 즐기는 태도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