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예쁜 뮤지컬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 사이에서 실제로 무언가를 포기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멈추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처음엔 그저 아름다운 로맨스로 보이지만, 볼수록 그 안에 담긴 현실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뮤지컬 영화가 낯선 분도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뮤지컬 장르를 썩 즐기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살짝 경계했습니다. 인물이 갑자기 노래를 시작하는 장면이 어색하게 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라라랜드〉는 달랐습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LA 고속도로 위에서 수십 명이 차 위에 올라 춤을 추는 장면이 펼쳐지는데, 이게 어색하기는커녕 오히려 "아, 이 도시가 꿈꾸는 자들의 도시구나"라는 감각을 단번에 전달해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음악이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이어제틱 사운드(diegetic sound)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영화 속 인물들도 실제로 듣고 있는 소리를 말합니다. 〈라라랜드〉의 음악은 이 경계를 의도적으로 허물면서,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세바스찬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미아를 이끌어 운명적 만남을 만드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이 서로에게 끌리면서도 애써 감정을 부정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이 부르는 넘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사로 말하면 작위적으로 느껴질 감정의 흐름이, 노래 안에서는 오히려 훨씬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이 뮤지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 음악이 감정과 관계의 변화를 직접 전달하는 역할을 함
-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무는 연출로 장르 거부감을 낮춤
- 뮤지컬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음
꿈을 향해 달려가는 두 사람, 그 설레는 순간들이 왜 이렇게 짠할까요?
배우를 꿈꾸는 미아와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 세바스찬. 두 사람이 처음 만나는 방식은 사실 꽤 황당합니다. 레스토랑 사장에게 해고를 선물받은 세바스찬이 어깨빵을 날리고 지나치는 것이 첫 만남이니까요. 그런데 이 어이없는 시작이 오히려 두 사람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미아의 경우, 배우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커피를 뒤집어쓰고, 오디션장에서는 마스터의 몇 마디에 감정선이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멈칫했던 건, 저도 무언가에 진심으로 임했다가 무심한 한마디에 자괴감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각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세바스찬은 재즈(Jazz)에 대한 철학을 가진 인물입니다. 여기서 재즈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즉흥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연주자가 그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예술 형식을 말합니다. 세바스찬이 아무도 듣지 않는 식당에서 홀로 연주하는 장면은, 인정받지 못해도 자신의 예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고독을 담아냅니다. 보랏빛 하늘 아래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이나 천문대에서 별들 사이를 떠다니는 장면은,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얼마나 특별하게 보이는지를 이 영화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IMDb, La La Land (2016)).
꿈과 사랑, 둘 다 잡을 수는 없는 걸까요?
영화의 여름 파트에서 세바스찬은 키스의 밴드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이 밴드의 음악은 그가 평생 지켜오려 했던 재즈와는 전혀 다른 방향입니다. 세바스찬이 이 선택을 한 이유는 미아를 위해서였습니다. 고정 수입도 없이 꿈만 좇으면 현실을 함께 꾸려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죠.
이 지점이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의 과도기에서 어떤 타협을 선택하는가의 문제는, 창작이나 예술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정면으로 마주치는 질문입니다. 세바스찬은 현실을 택했고, 미아는 그 선택이 왜 이루어졌는지를 처음엔 이해하지 못합니다.
색채 연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미아는 따뜻한 붉은빛으로, 세바스찬은 차가운 푸른빛으로 대비됩니다. 컬러 그레이딩(color grading)이라는 후반 작업 기법인데, 이는 촬영 이후 색조를 조정하여 인물의 심리 상태나 서사적 의미를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이 기법을 통해 두 사람이 겉으로는 함께하지만 내면의 온도가 이미 달라졌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각자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생긴 오해에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단순한 사랑 싸움이 아니라 훨씬 보편적인 아픔으로 느껴지게 만듭니다.
그 결말, 해피엔딩으로 봐야 할까요, 새드엔딩으로 봐야 할까요?
몇 년이 흐른 뒤, 미아는 유명 배우가 되었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들어선 재즈바의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바스찬이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재즈바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세바스찬의 연주가 시작되며 두 사람이 함께했을 또 하나의 삶이 스크린을 가득 채웁니다.
이 시퀀스를 처음 봤을 때, 저는 말 그대로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웠고, 동시에 너무 슬펐습니다. 이 가상의 삶은 카운터팩추얼(counterfactual), 즉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는 서사 기법으로 구성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상상을 영상으로 펼쳐 보이는 방식입니다. 이 기법 덕분에 관객은 현실과 상상 사이에서 두 사람과 함께 아쉬움을 느낍니다(출처: Metacritic, La La Land 리뷰 종합).
그러나 제가 이 결말을 단순한 새드엔딩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원했던 꿈을 실제로 이루었습니다. 미아는 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자신의 재즈바를 열었습니다. 그 꿈을 꿀 수 있었던 데에는 서로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미소 한 번에 미련과 감사, 사랑과 작별이 모두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꿈을 이루면 모든 것이 행복해진다는 판타지 대신, 어떤 선택에는 반드시 상실이 따른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라라랜드 결말이 새드엔딩인가요 해피엔딩인가요?
A. 단정 짓기 어려운 결말입니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 꿈을 이루었지만 서로와 함께하지는 못했습니다. 성공과 사랑을 동시에 얻는 판타지 대신, 선택에는 반드시 상실이 따른다는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라 어느 쪽으로도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기도 합니다.
Q. 라라랜드는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과 춤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관계 변화를 전달하는 도구로 쓰이기 때문에, 뮤지컬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음악이 빠졌다면 표현하기 어려웠을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Q. 세바스찬이 밴드에 합류한 이유가 뭔가요?
A. 미아를 위해서였습니다. 고정 수입 없이 재즈만 고집해서는 미아와의 현실적인 삶을 꾸려가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밴드의 음악이 세바스찬이 지켜오려 했던 재즈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는 점이고, 이 선택이 두 사람 사이의 균열로 이어집니다.
Q. 마지막 재즈바 장면에서 세바스찬이 연주한 곡이 무슨 의미인가요?
A. 두 사람이 처음 운명적으로 마주쳤던 그 곡입니다. 세바스찬의 연주를 통해 두 사람이 함께했을 또 하나의 삶이 펼쳐지는데, 이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이라는 가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카운터팩추얼 기법입니다. 그 상상이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두 사람은 짧은 미소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결론
〈라라랜드〉를 처음 본 날 이후로 제가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솔직히 셀 수가 없습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지점이 눈에 들어왔고, 이번에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상당히 달랐습니다. 처음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였고, 그다음엔 꿈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였고, 지금은 선택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이 영화가 무조건 꿈을 향해 달려가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저는 오히려 좋습니다.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것을 잃게 되는지,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쯤 시간을 내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두 번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과 다른 장면이 분명히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