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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누룩 (장동윤, 성장영화, 누룩의비밀, 경계의질문)

by hoziii 2026. 8. 21.

고등학생이 매일 막걸리를 마신다면, 그건 문제일까요?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서는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단순했는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장동윤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누룩>은 막걸리를 사랑하는 18세 소녀 다슬의 이야기로 시작해,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무게의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생활감 넘치는 성장영화가 미스터리로 바뀌는 순간

화장품 공병에 막걸리를 담아 학교에 가져가는 장면, 저는 이걸 보면서 처음엔 그냥 웃었습니다. 다슬이라는 인물이 너무 자연스럽고 생기 있게 그려져서, 이게 심각한 알코올 문제라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거든요. 아버지가 운영하는 양조장에서 어린 시절부터 막걸리 곁에서 자란 아이. 어르신들과 술상을 펼치고 밤새 노는 아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감독이 이렇게 유쾌한 도입부를 쓸 줄 아는 사람인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누룩이 사라지고 나서부터 영화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기서 누룩이란 막걸리를 발효시키는 데 쓰이는 전통 발효제로, 쉽게 말해 막걸리의 맛과 품질을 결정짓는 핵심 재료입니다. 다슬의 양조장에서 쓰던 누룩은 그냥 시중에 유통되는 입국(入麴)이 아니라, 이전 양조장 주인과의 약속 속에 이어져 온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입국이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표준화된 발효 스타터를 말하는데, 전통 방식의 자가 누룩과는 발효 특성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누룩이 사라진 뒤 다슬은 환청과 악몽에 시달리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쓰러지고, 얼굴은 창백해지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 취급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보면서 느낀 건, 다슬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너무 익숙하다는 거였습니다. 설명이 안 되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향해 "병원 가야지"라고 말하는 방식, 그게 우리 주변에도 꽤 흔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개념으로 일부 설명하기도 합니다. 가스라이팅이란 타인의 인식이나 경험을 지속적으로 부정함으로써 당사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을 의미합니다. 다슬이 처한 상황이 정확히 이 구조를 닮아 있었습니다. 가족도, 동네 사람도, 심지어 오빠까지도 다슬의 감각 자체를 부정하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기자 한 명만 "일단 들어볼게요"라는 태도를 취한다는 설정이, 저한테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이 영화에서 다슬의 상태 변화가 단순한 알코올 의존(alcohol dependence)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알코올 의존이란 알코올 섭취를 조절하지 못하고 신체적·심리적으로 의존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하는데, 다슬의 증상은 그것과는 다른 결을 보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알코올 사용 장애(AUD, Alcohol Use Disorder)를 진단할 때 단순한 음주량이 아니라 기능 저하와 생활 패턴 전반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출처: WHO 알코올 팩트시트). 그 기준으로 다슬을 다시 보면, 오히려 누룩이 바뀌기 이전의 그녀는 기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 장치가 됩니다.

  • 누룩 분실 전: 성적 우수, 사교성 좋음,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
  • 누룩 분실 후: 환청, 악몽, 신체 기능 저하, 사회적 고립
  • 전통 누룩과 입국의 차이가 이야기의 핵심 분기점으로 작동
요약: 유쾌한 성장영화로 시작한 <누룩>은 전통 누룩의 소멸을 계기로 '경험을 부정당한 사람'의 이야기로 전환되며, 그 낙차가 영화의 가장 강력한 장치로 기능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이 영화는 어디까지 밀어붙이는가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다슬이 대형 양조장에 침입해 누룩을 훔치는 부분이었습니다. 창문을 벽돌로 깨고 들어가 누룩을 포대자루에 담는 그 장면, 저는 다슬을 응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행동 자체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에서 양심의 가책보다 묘한 확신이 읽혀서, 그게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불편함을 주는 장면이 오히려 오래 남더라고요.

영화는 이 장면 이후에도 다슬이 옳은가 그른가를 명확히 정리해 주지 않습니다. 감독 장동윤은 팬데믹 시기 "막걸리가 병을 치료한다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출발점이 가벼웠던 만큼, 영화 후반부에서 은유가 여러 층위로 쌓이면서 다소 난해해지는 건 사실입니다. 집단적 고통, 발효와 부패의 경계, 인정받지 못한 감각 같은 주제들이 한꺼번에 얽히다 보니 어떤 메시지를 중심에 놓아야 할지 흔들리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유효한 이유는, '경계 설정(boundary-setting)'이라는 문제를 인물 관계 속에서 아주 정밀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경계 설정이란 심리학적으로 개인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감정, 경험, 인식의 영역을 지키는 행위를 말합니다. 오빠는 다슬을 걱정하면서도 그녀의 경험 자체를 계속 부정합니다. 아버지는 반대로 지나치게 내버려 둡니다.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다슬은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한국 정신건강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경험이 지속적으로 무시당하는 환경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 다슬이 상담을 받으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이 맥락에서 읽으면, 영화의 구조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치료보다 먼저 필요한 건 "네 말이 맞아"라는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세게 가져가게 된 질문이었습니다.

오빠가 빈 바구니에서 이상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는 장면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이 나오면 대부분 "아, 이게 복선이구나" 하고 넘기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 감각이 어디서 오는지 끝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게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그냥 설명되지 않는 채로 두는 것, 그것 자체가 이 영화의 태도니까요.

요약: <누룩>은 다슬의 행동 옳고 그름을 판결하지 않고, 타인의 경험을 부정하는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지며 끝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누룩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2026년 공개된 작품으로, 개봉 경로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여부는 현재 공식 배급사 채널에서 확인하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저도 영상 자료를 통해 접하게 됐는데, 정식 공개 채널이 확정되면 그쪽을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Q. 누룩과 입국은 어떻게 다른가요?

A. 전통 누룩은 밀이나 쌀에 자연 발생하는 곰팡이와 효모를 이용해 만든 발효제입니다. 반면 입국은 공장에서 특정 균주를 단일 접종해 대량 생산한 표준화된 발효 스타터인데, 맛의 복잡성보다 균일성과 효율에 집중된 방식입니다. 이 차이가 막걸리 풍미의 근본적인 차이를 만든다고 보면 됩니다.

 

Q. 영화 결말에서 누룩의 비밀이 밝혀지나요?

A. 영화는 누룩의 비밀을 완전히 해명하지 않고 마무리됩니다. 이 점이 호불호를 갈리게 하는 요소이기도 한데, 저는 그 미해결이 오히려 영화의 태도를 드러내는 장치라고 읽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도 실재한다"는 메시지를 형식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니까요.

 

Q. 미성년자 음주를 다루는 영화인데 불편하지 않나요?

A. 솔직히 처음엔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다슬의 음주를 미화하는 방식으로 그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고립을 꽤 정직하게 보여주는 편입니다. 다만 이 부분은 보는 사람마다 체감이 다를 수 있어서,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영화 <누룩>은 전통 발효 문화를 소재로 쓰면서도 결국 사람 이야기를 하는 영화입니다. 누군가의 감각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정상'이라는 기준으로 얼마나 쉽게 타인의 경험을 재단하는지, 그 질문이 막걸리와 누룩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전달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오래 남은 건 다슬의 행동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 방식이었습니다.

후반부 은유의 밀도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장동윤 감독의 첫 장편이라는 걸 감안하면 꽤 단단한 시도였습니다. 막걸리나 전통주에 관심이 있다면 소재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하고, 한국 독립영화나 미스터리 성장영화 쪽에 관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아래 참고 영상을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LarauMgl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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