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은 60년 넘게 존재한 마블의 간판 캐릭터입니다. 2002년 첫 실사 영화부터 지금까지 세 배우가 피터 파커를 연기했고, 2026년 드디어 톰 홀랜드 주연의 새 시리즈 첫 편 《스파이더맨: 브랜뉴 데이》가 개봉했습니다. 저도 오래전부터 이 시리즈를 챙겨봐 왔는데, 신작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새 배우가 아닌데도 왜 이렇게 설레는지 스스로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세 배우, 같은 피터 파커를 다르게 읽는 법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세 배우가 같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제가 느낀 온도는 제각각이었습니다.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는 묵직하고 조금 엄숙했습니다.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연출 덕분에 '책임의 무게'가 화면 전체에 깔려 있었고, 그게 2000년대 초반 관객에게 잘 먹혔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류 가필드의 시리즈는 달랐습니다. 《500일의 썸머》를 만든 마크 웹 감독이 연출을 맡은 만큼, 사랑과 상실의 감정이 훨씬 섬세하게 표현됐습니다. 실제로 가필드는 엠마 스톤과 연인 사이였고 그 감정이 스크린에 고스란히 배어났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그웬 스테이시가 떨어지는 장면, 거미줄 끝이 손 모양으로 뻗으며 잡을 듯 닿지 못하는 그 컷은 제가 지금도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톰 홀랜드는 원작 코믹스에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어릴 때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무대를 밟았고, 댄서 출신답게 공중 액션 상당 부분을 직접 소화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배우가 평소 SNS에서 보여주는 모습과 피터 파커라는 캐릭터 사이에 괴리가 없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무기가 유머와 입담이라고 한다면, 홀랜드는 그 부분에서 역대 배우 중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꼈습니다.
- 토비 맥과이어: 책임과 희생의 무게, 생체 거미줄 설정
- 앤드류 가필드: 사랑과 상실 중심, 웹슈터 방식 복귀
- 톰 홀랜드: 원작 코믹스에 가장 근접, MCU 연계 서사 주도
벽에 달라붙는 능력, 실제 원리는 무엇인가
스파이더맨이 어떻게 벽에 붙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파고들수록 꽤 재밌는 물리학이 나옵니다. 영화에서는 피부에서 갈고리 같은 돌기가 나와 벽면에 걸리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 방식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처럼 무거운 생명체가 미세한 돌기로 매달리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피부째 뜯겨 나옵니다.
달팽이처럼 점성 액체를 분비해 붙는 방식도 검토 대상이지만, 이 경우에는 이동할 때마다 끈적한 흔적이 남고 소리도 납니다.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스파이더맨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반데르발스 힘(van der Waals force)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여기서 반데르발스 힘이란 분자와 분자 사이에 발생하는 약한 전기적 인력을 말합니다. 도마뱀붙이 발바닥에 있는 수십억 개의 나노미터 크기 털이 바로 이 힘으로 벽면 분자에 달라붙습니다. 공식 마블 설정에서도 피터 파커가 생체 전기장을 강제 증폭시켜 이 반데르발스 힘을 극대화한다고 설명합니다(출처: Marvel Official). 저는 이 설명을 처음 접했을 때 '이게 그냥 슈퍼히어로 설정이 아니라 실제 물리학을 기반으로 구성됐구나'라는 생각에 꽤 오래 멈춰 있었습니다.
거미줄도 마찬가지로 흥미롭습니다. 토비 맥과이어 버전의 생체 거미줄은 사실 제임스 카메론이 처음 영화화를 시도할 때 도입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원작 코믹스와 나머지 모든 실사·애니메이션 시리즈는 피터가 직접 발명한 기계식 웹슈터(Web-Shooter)를 사용합니다. 생체 거미줄을 하루 충분히 사용하려면 이론상 햄버거 70개 분량인 약 4만 킬로칼로리를 섭취해야 한다는 계산도 있는데, 그래서 토비 맥과이어의 피터 파커가 항상 허기져 보였던 것이 단순한 연출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재밌었습니다.
노웨이 홈의 기억 삭제, 양자 정보학으로 보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어떻게 전 세계 사람들의 기억을 지웠는지,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마법이라고 넘기기에는 마블 세계관이 항상 과학적 근거를 어딘가에 심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정보 물리학(Information Physics) 관점에서 접근하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여기서 정보 물리학이란 정보를 단순한 지식이 아닌 물리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물리학 분야로, '모든 것은 정보다(It from Bit)'라는 존 휠러의 명제에서 출발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기억도 양자 정보망에 저장된 데이터와 같습니다.
그런데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면 란다우어 원리(Landauer's Principle)에 따라 반드시 열에너지가 발생합니다. 란다우어 원리란 정보 1비트를 삭제할 때 최소한의 열에너지가 불가역적으로 발생한다는 법칙입니다(출처: Physics Today). 전 세계 수십억 명의 기억을 완전 삭제한다면 발생하는 폐열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마법사라도 감당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그래서 저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기억 자체를 지운 게 아니라 '피터 파커'라는 인덱스만 수정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책 목록만 삭제하면 책은 그대로 있어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인덱스를 다시 복원하는 방식으로 피터 파커를 기억하는 인물이 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브랜뉴 데이》에서 그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개봉 전부터 기대감이 남달랐습니다.
브랜뉴 데이, 피터 파커가 진짜 성인이 되는 이야기
《브랜뉴 데이》가 단순한 속편이 아닌 이유는 피터 파커가 처음으로 '20대 사회 초년생'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노 웨이 홈의 마지막 장면과 바로 이어지는 설정에서, 피터는 MJ와 네드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을 SNS로만 지켜봐야 합니다. 눈앞에서 MJ가 새 남자 친구와 키스하는 장면도 나온다고 하니, 이건 어지간한 감정 내공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꽤 오래 쓸쓸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마크 마론이 스코피언 역으로, 마크 러팔로가 세이비어 헐크로 가세하고 CD 생크 등 탄탄한 악당 라인업이 더해졌습니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 26분짜리 다큐멘터리 《Generations: The Evolution of Spider-Man》에서는 세 명의 스파이더맨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고, 톰 홀랜드 본인이 "이 영화의 마지막 프레임 자체가 브랜뉴 데이"라고 언급해 대규모 엔딩 반전에 대한 기대를 높였습니다.
저는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계속 찾아보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액션이 아니라 성장 서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대사는 원래 널리 쓰이던 격언이었지만,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이 말을 가장 실감 나게 살아내면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히어로로서의 책임, 어른으로의 성장, 그리고 사회가 강한 힘을 가진 주체에게 기대하는 것까지, 이 한 문장이 담는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습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버스》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멀티버스(Multiverse), 즉 서로 다른 평행 우주가 공존하는 세계관을 활용해 마일스 모랄레스를 중심 주인공으로 세웠고, 포스트 말론과 스웨 리의 'Sunflower' OST와 함께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은 만화책 페이지를 직접 넘기는 듯한 작화 스타일로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의 기준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브랜뉴 데이는 노 웨이 홈 바로 이후 이야기인가요?
A. 네, 설정상 노 웨이 홈의 엔딩 직후를 이어받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으로 모든 사람이 피터 파커를 잊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며, MJ와 네드도 피터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전 시리즈를 먼저 보고 가면 감정선이 훨씬 잘 이해됩니다.
Q.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은 몇 편까지 나오나요?
A. 브랜뉴 데이가 새로운 트릴로지의 첫 편입니다. 앞으로 두 편이 더 나올 예정이어서 솔로 단독 영화 기준으로 최소 여섯 편이 됩니다. 다만 톰 홀랜드의 나이와 캐릭터 특성상 이번 트릴로지를 마지막으로 볼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Q.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처음 보는데 어디서 시작하면 좋을까요?
A. MCU 흐름을 따라가고 싶다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서 톰 홀랜드의 첫 등장을 확인하고 홈커밍, 파 프롬 홈, 노 웨이 홈 순으로 보는 것을 권합니다. 시리즈 역사 전체가 궁금하다면 2002년 샘 레이미 감독의 1편부터 순서대로 보는 방법도 있고, 각 트릴로지가 독립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어 큰 부담은 없습니다.
Q. 스파이더버스 애니메이션은 실사 영화와 연결되나요?
A. 직접적인 스토리 연결은 없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마일스 모랄레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별도의 세계관입니다. 다만 멀티버스 개념과 여러 버전의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실사 시리즈와 주제적으로 맞닿아 있어, 두 시리즈를 함께 보면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폭이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결론
스파이더맨이 60년 넘게 사랑받아온 이유를 곱씹다 보면, 결국 이 캐릭터의 힘은 능력이 아니라 평범함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록금이 걱정되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하고, 알바를 뛰어야 생계가 돌아가는 사람이 동시에 도시를 구하는 히어로라는 설정. 이 간격이 좁혀지지 않는 긴장감이 시리즈 내내 독자와 관객을 붙잡아두는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브랜뉴 데이》가 시작하는 지금, 이전 시리즈를 아직 못 보셨다면 샘 레이미 감독의 2002년 1편부터 순서대로 보면서 각 배우가 피터 파커를 어떻게 달리 해석했는지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관람 준비가 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서 극장에 앉으면, 브랜뉴 데이의 첫 장면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