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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 리뷰, 날씨 메타포, 휴먼 비잉)

by hoziii 2026. 7. 29.

완벽하게 선한 사람만이 위로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질문을 붙들었습니다. 박혜영 작가의 신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화려한 사건 대신 각 인물이 품어온 열등감과 상처, 그리고 무가치함을 천천히 마주하는 과정이 촘촘하게 그려진 드라마입니다.

 

드라마가 설계한 세계: 통제와 날씨의 메타포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치는 극 중 영화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였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이 짧게 스쳐 지나가는 가상의 영화 장면이 드라마 전체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영화 속 세계는 AI가 날씨를 통제하는 디스토피아입니다. 여기서 '날씨'는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상징하는 메타포(metaphor)로 기능합니다. 메타포란 하나의 개념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적 장치인데, 이 드라마는 '통제되지 않는 날씨 = 예측 불가능한 인생'이라는 메타포를 정교하게 설계했습니다.

극 중 잡혀온 아이가 "통제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멈춰서 다시 돌려봤습니다. 단순한 대사처럼 들리지만, 이 문장 안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 전부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통제할 수 없는"이 아니라 "통제될 수 없는"이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통제할 수 없다'는 건 나의 능력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반면 '통제될 수 없다'는 건 대상 자체가 어떤 기준으로도 억누르거나 길들일 수 없다는, 존재론적 불가능성에 방점이 찍힌 표현입니다. 즉 "나는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수정돼야 할 실패작이 아니다"라는 선언인 셈이죠.

드라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 기준의 압박 속에 있었습니다. 은하는 버려진 과거를 통제할 수 없어 코피를 흘렸고, 동만은 안 풀리는 삶 앞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발버둥쳤습니다. 저도 실제로 어떤 시기에 '내가 충분히 생산적인가'를 매일 자문했던 경험이 있어서, 이 인물들의 불안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 날씨 = 통제할 수 없는 삶의 메타포로 일관되게 설계됨
  • '통제될 수 없다'는 표현은 존재 자체의 가치를 긍정하는 선언
  • 인물들의 불안은 모두 '기준에 미달했다'는 감각에서 비롯됨
요약: 드라마는 날씨 메타포를 통해, 삶이 통제되지 않는 것은 결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본질임을 말한다.

 

핵심 분석: 무가치함과 싸우는 방식의 두 갈래

드라마를 보면서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다고 느꼈던 지점이 있었습니다. 황동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공감되고 응원하게 되는 주인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동만은 자신의 특별함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상처받을 때 타인에게 막말을 내뱉는 인물입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는데, 나르시시즘이란 자아에 대한 과도한 몰입으로 타인의 감정에 둔감해지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초반 몇 회 동안 동만이 실제 주변에 있다면 거리를 두고 싶은 유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사실 작품의 핵심이었습니다. 박혜영 작가는 완벽하게 호감 가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무가치함을 가장 거칠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방어하는 인간을 전면에 세운 겁니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조용히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동만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집마입니다. 집마는 동만에게 "인간은 휴먼 두잉(Human Doing)이 아니라 휴먼 빙(Human Being)이야"라고 말합니다. 휴먼 두잉이란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 상태를, 휴먼 빙이란 무언가를 해내지 않아도 그냥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저는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꼈는데, 영화 장면과 연결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 말의 무게가 제대로 와 닿았습니다.

미국 인본주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위계에서 '존재 가치(Being Value)'를 최상위에 놓은 바 있습니다. 인간이 성취나 조건 없이 그 자체로 온전할 수 있다는 관점인데, 드라마가 이 심리학적 통찰을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낸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출처: Simply Psychology, Maslow's Hierarchy of Needs).

요약: 동만의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는 불편하지만, 그것조차 무가치함과 싸우는 인간의 진짜 모습이며 드라마의 핵심 설계다.

 

실전 적용: 이 드라마가 일상에 건네는 위로

드라마가 말하는 메시지는 결국 이겁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측정 가능한 존재로 취급하며 끊임없이 점수를 매긴다는 것. 쓸모 있는가, 생산적인가, 사랑받을 만한가. 이 자기 평가 루프(self-evaluation loop)는 멈추지 않습니다. 자기 평가 루프란 자신을 외부 기준에 비추어 반복적으로 검열하는 심리 패턴으로, 만성적인 열등감과 불안의 근원이 됩니다.

그런데 날씨는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흐린 날이라고 해서 무가치한 하늘이라 부르지 않듯이, 동만은 인간의 삶도 그냥 그날의 날씨처럼 존재하면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동만이 인생의 목적을 묻는 집마에게 "웃기게"라고 답했을 때, 집마가 처음으로 합격을 줬다는 장면이 제 마음에 한참 남아 있었습니다.

저도 직접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예상 밖이었던 건, 무거운 메시지를 가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서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는 점입니다. 결말이 찝찝한 열린 결말이 아니라 완전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텐데요. 은하가 자신이 변시온임을 미란에게 밝혔을 때, 미란이 아무 말 없이 은하를 꼭 안아주는 장면에서 저도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게 조건 없이 수용받는 경험은 자존감 회복에 있어 자기 성취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미란이 은하를 안아준 그 장면이 단순한 감동 코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동만이 경세에게 막말한 뒤 통쾌함이 아닌 후회를 느끼고 무릎을 꿇으며 "형이랑 다시 친해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도, 상처를 주고 난 뒤 돌아서 사과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 저는 이게 이 드라마가 건네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드라마는 무언가를 이뤄야 가치 있다는 자기 평가 루프에서 벗어나,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위로를 일상의 언어로 전달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의 아저씨》나 《나의 해방일지》를 안 봤어도 이 드라마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박혜영 작가 특유의 잔잔하고 내면 중심적인 서사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독립적인 이야기로 완결됩니다. 다만 전작들을 좋아했던 분이라면 이 드라마의 결을 더 빨리 알아채고 몰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황동만 캐릭터가 너무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던데, 계속 보는 게 맞을까요?

A. 저도 초반에 같은 이유로 몇 번 멈칫했습니다. 동만의 나르시시즘적 태도가 불편한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불편함 자체가 드라마가 설계한 감정인 만큼, 중반부까지는 믿고 보는 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이 스타일의 캐릭터에 처음부터 거부감이 크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도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Q. 극 중 영화 〈날씨를 만들어 드립니다〉가 드라마에서 얼마나 비중 있게 나오나요?

A. 장면 분량 자체는 매우 짧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장면이 드라마 전체의 주제 의식을 가장 명확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오히려 그 밀도가 상당합니다. 인물들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시청자도 자연스럽게 같은 감정 흐름에 합류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Q. '휴먼 빙(Human Being)'이라는 개념이 이 드라마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나요?

A. 드라마 안에서 휴먼 빙은 '무언가를 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 삶'에서 벗어나, 그냥 살아 있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담습니다. 집마가 동만에게 건네는 이 말은 처음엔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극 중 영화 장면과 연결해서 보면 드라마 전체 서사의 결론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론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제가 본 박혜영 작가의 작품 중에서 메시지가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그 직접성이 무겁지 않게 전달된 작품이었습니다. 완전한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됐다는 것도, 지금 이 시기에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에게는 꽤 중요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황동만이라는 인물에 처음부터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는 건 이해가 됩니다. 저도 같은 과정을 겪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불편함까지 감수하며 보고 나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한 것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잔잔하지만 깊은 위로를 주는 드라마를 찾고 계신 분이라면, 이 작품을 꼭 한 번 끝까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iievMBl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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