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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 박서준, 소신, 갑을관계, 성장서사)

by hoziii 2026. 9. 7.

소신 있게 살면 결국 잘 된다는 말, 저도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은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하지?"였거든요. 퇴학, 아버지 실직, 감옥. 소신을 지켰더니 얻은 게 그것이었습니다. 근데 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건 '소신이 성공을 보장한다'가 아니라, '소신은 반드시 무언가를 잃는 선택'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소신이 멋있다고? 실제로는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

일반적으로 '소신 있는 주인공'이라고 하면 멋있게 한마디 하고 박수받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습니다. 제가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전개되는 장면은 달랐습니다.

전학 첫날 박새로이는 같은 반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보다가 말리려 하고, 결국 장근원을 때립니다. 문제는 장근원이 장가 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장가 그룹이란 극 중 요식업 대기업으로, 새로이 아버지의 직장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 집단입니다. 갑을관계(甲乙關係), 즉 계약이나 권력 구조에서 우위에 있는 쪽과 종속된 쪽의 관계가 이미 새로이의 아버지를 단단히 묶어두고 있었던 셈입니다.

교무실 장면이 가장 강렬했습니다. 장대희 회장은 새로이에게 장근원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요구합니다. 새로이는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면서도 장근원에 대한 사과만큼은 거절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직접 느낀 건 답답함이었습니다. "그냥 한 번 참으면 되잖아"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솔직히 현실에서 저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관계가 틀어질까 봐, 일이 커질까 봐.

그런데 새로이의 아버지가 오히려 아들을 탓하지 않고 "소신대로 살았으니 됐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제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아들 때문에 평생 다니던 직장을 잃은 날인데도 아버지는 사직서를 내고 나오면서 아들에게 "잘 봤다"고 합니다. 권위성 측면에서 이 장면은 한국 드라마가 갑을관계를 다룬 방식 중 가장 날카로운 편에 속한다고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국내 시청률 조사 기관인 닐슨코리아 집계 기준으로 〈이태원 클라쓰〉는 최고 시청률 16.5%를 기록하며 JTBC 역대 드라마 중 상위권에 올랐습니다(출처: 닐슨코리아).

이 드라마를 보고 제가 다시 떠올린 건, 제가 그냥 넘어갔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그냥 겁이 났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새로이를 보면서 확신할 수 없게 됐습니다.

  • 장대희의 무릎 꿇기 요구 — 갑을관계를 이용한 굴복 설계
  • 새로이의 거절 — 퇴학과 아버지 실직이라는 실제 대가
  • 아버지의 반응 — "잘 봤다"는 한마디가 이 드라마의 핵심 감정
요약: 소신을 지킨다는 건 멋있는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를 잃는 선택이며, 이 드라마는 그 대가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보여준다.

 

성장서사인데, 성공이 목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복수 서사(復讐 敍事)라고 하면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끝까지 달려가는 구조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복수 서사란 주인공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대상에게 응징을 가하는 것을 중심 플롯으로 삼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이태원 클라쓰〉도 얼핏 보면 그 틀처럼 보입니다. 아버지를 뺑소니로 잃고, 감옥에서 3년을 보내고, 출소 직후 장가 회장의 자서전을 수백 번 읽으며 전략을 세웁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몇 번을 다시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새로이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은 분노를 키운 시간이 아니라, 자기 삶의 방향을 다시 설계한 시간이었습니다. 출소 후 그가 원양어선을 탄 것도, 나중에 단밤이라는 요식업 브랜드를 이태원에서 시작한 것도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 즉 어떤 가치를 가진 사람이 만드는 가게인가가 새로이에겐 처음부터 명확했던 겁니다.

이서 캐릭터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읽혔습니다. IQ 160에 SNS 팔로워 70만 명의 천재 소녀,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는 설정은 솔직히 처음엔 과하다 싶었습니다. 소시오패스(Sociopath)란 공감 능력이 결여되고 충동 조절이 어려운 반사회적 성격 유형을 가리키는데, 실제로 이서의 행동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장면이 재미있는 개성처럼 소비되는 방식으로 그려질 때가 있어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은 작품의 한계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 성장서사가 설득력 있는 이유는 새로이가 성공했을 때 "제가 맞았죠?"라는 표정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가 회장이 다시 찾아와 무릎을 꿇으라고 할 때도, 그의 반응은 오기가 아니라 지긋이 버티는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대 초 한국 드라마의 흥행 요인 중 '자아 정체성 서사'의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태원 클라쓰〉는 그 흐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이 드라마가 묻는 건 단순한 성공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서 성공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새로이를 통해 가장 뜨겁게, 가장 구체적으로 전달됩니다. 제 경우엔 이 부분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요약: 〈이태원 클라쓰〉의 성장서사는 복수 그 자체가 아닌 '어떤 사람으로 성공할 것인가'를 묻는 자아 정체성 서사이며, 그것이 이 드라마를 단순 복수극과 구분 짓는 핵심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태원 클라쓰 웹툰이랑 드라마 중 뭐가 더 나은가요?

A. 일반적으로 웹툰 원작 드라마는 실사화하면 오글거린다는 인식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오히려 원작보다 대사의 밀도가 높게 느껴졌습니다. 박서준이 박새로이를 연기했다기보다 그냥 박새로이가 박서준으로 태어난 것 같은 싱크로율이 있었습니다. 웹툰을 먼저 보셨더라도 드라마를 별도로 볼 이유가 충분합니다.

 

Q. 이태원 클라쓰가 갑을관계를 다룬 드라마라는데, 현실적인가요?

A. 장대희 회장이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하는 장면처럼 노골적인 상황은 다소 극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권력 차이를 이용해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구조 자체는 현실에서도 드물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이 드라마가 불편하게 와닿는 이유는 바로 그 구조가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Q. 조이서 캐릭터가 소시오패스 설정인데, 불편하지 않나요?

A. 솔직히 이 부분은 저도 아쉽게 봤습니다. 소시오패스적 성향이 때로는 타인을 상처 입히는 행동을 개성처럼 소비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연출되는 장면이 몇 군데 있었거든요. 캐릭터 자체의 능력과 주체성은 매력적이지만, 그 설정이 언제나 긍정적으로 소비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짚고 볼 만합니다.

 

Q. 박새로이가 너무 완벽한 인물 아닌가요?

A. 새로이가 지나치게 올곧게 그려진다는 지적은 타당합니다. 현실에서는 소신만으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없고, 때로는 유연함이 더 책임 있는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 드라마가 현실 시뮬레이션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 서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선명함 자체가 의도된 장치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태원 클라쓰〉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계속 생각한 건 드라마 속 명대사가 아니었습니다. 퇴학당하고, 아버지를 잃고, 감옥에 다녀온 뒤에도 새로이가 무너지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그건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잃어도 괜찮은 것과 절대 잃으면 안 되는 것을 처음부터 구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선명한 선악 구도가 현실을 단순화한다는 비판도 있고, 저도 그 부분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함 덕분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일단 1화만 보시면 됩니다. 멈추기 어려워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0ikE6tF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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