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어워즈가 2026년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Music Performance)' 부문을 신설한다고 공식 발표한 직후, BTS 멤버들은 각자의 SNS를 통해 해당 부문 출품을 거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저는 단순한 시상식 불만 표시와는 결이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별도 부문 신설이 환영받아야 할 '포용'인지, 아니면 교묘한 분리인지 — 이 논란은 그 경계에 정확히 걸쳐 있습니다.

배경: 그래미는 왜 지금 '아시아 부문'을 만들었나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Recording Academy)는 수십 년 전부터 흑인 음악을 위한 R&B·랩 부문, 라틴 음악 전용 부문을 별도로 운영해 왔습니다. 이번에 아시아 팝 부문을 추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게 공식 입장입니다. 레코딩 아카데미 내부에서 아시아계 음악인들의 수상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수년간 검토해 온 결과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타이밍이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BTS가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컴백하는 시점, 그리고 새 앨범 초기 여론이 기대보다 좋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던 시점과 정확히 맞물렸기 때문입니다. 내부 인사의 발언으로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그래미 측은 BTS가 이 부문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된다면 상의 권위가 높아지는 '윈윈 시나리오'가 된다는 계산도 했다고 합니다. BTS의 군 복무 시절부터 구상이 시작됐다는 정황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1957년 창설 이후 다양성 확대를 명분으로 여러 차례 부문을 신설해 왔습니다(출처: Recording Academy 공식 사이트). 문제는 특정 장르나 지역을 별도 부문으로 분리할 때, 그 경계가 포용의 창구가 되는지 아니면 주류 경쟁에서의 배제를 제도화하는지가 항상 논쟁이 된다는 겁니다.
세그리게이션(segregation)이라는 단어까지 꺼내는 분들도 있는데, 여기서 세그리게이션이란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사실상 분리된 트랙으로 유도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별도 시상 부문이 늘어날수록 아시아 음악은 본선(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이 아닌 별도 리그에서 싸우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옵니다.
- 그래미 아시아 팝 부문 신설 발표 시점: BTS 완전체 컴백 직후
- 레코딩 아카데미는 수년간 검토 끝에 결정이라고 밝혔으나, 내부 인사 발언과 배치되는 부분 존재
- 흑인·라틴 별도 부문 선례가 있지만, 해당 부문들도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음
- BTS의 보이콧 선언 이후 그래미 공식 SNS에서 BTS 관련 4년 전 영상이 삭제됨
분석: 보이콧이 드러낸 것과 가려진 것
BTS 멤버들은 출품 거부 선언문에서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보다 음악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꽤 오래 멈췄습니다. 단순한 항의 성명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평가받고 싶은지에 대한 입장을 담은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빌보드 핫100 1위, 수십만 관중 월드투어, FIFA 월드컵 하프타임 쇼 같은 커리어를 쌓은 팀이 자신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새 상을 거부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더 강한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BTS 팬덤 아미(ARMY)는 음원 서비스 78개국에서 BTS의 곡 '에일리언스(Alienness)'를 1위에 올리는 방식으로 응답했습니다. 이 반응은 단순한 팬덤 결집을 넘어 글로벌 여론이 그래미의 결정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보이콧을 무조건 정의로운 행동으로 소비하는 것에는 저도 조금 신중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미가 해당 부문을 신설한 취지와 실제 운영 방식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미 측 핵심 인사는 BTS의 보이콧을 두고 "가장 영향력 있는 아시아 아티스트 중 한 팀 때문에 우리는 무너졌다"고 발언하면서도, 동시에 "이 상은 BTS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두 발언이 같은 입에서 나왔다는 게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글로벌 음악 산업에서 세계음반산업협회(IFPI)가 집계한 2024년 K팝 스트리밍 규모는 전체 글로벌 음악 시장의 약 7%를 차지했습니다(출처: IFPI 글로벌 뮤직 리포트). 이 수치는 K팝이 이미 지역 장르가 아닌 글로벌 장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K팝을 '아시아 팝'이라는 지역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현실을 반영한 분류인지, 아니면 현실을 뒤처진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인지는 충분히 질문할 수 있습니다.
메인스트림(mainstream) 필드, 즉 올해의 앨범이나 올해의 레코드 같은 주요 본상 부문에서의 경쟁과 별도 지역 부문에서의 경쟁은 심사 기준이나 노출 효과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는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본상 진입을 위한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어렵게 만드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처럼 작동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리 천장이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진입을 막는 구조적 장벽을 뜻합니다.
전망: 별도 부문이 다양성이 되려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 논란이 단순히 BTS 팬덤과 그래미 사이의 충돌로 소비될 줄 알았는데, 프로듀서 슬립디즈처럼 그래미 수상 경험이 있는 미국 음악계 인사들까지 내부 발언을 공개적으로 폭로하는 흐름으로 번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 논란이 K팝 팬덤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미라는 제도 자체의 신뢰성 문제로 확장됐다는 신호입니다.
그래미가 앞으로도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별도 부문 신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심사단(voting member) 구성에서 아시아계 음악 전문가의 비율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되는지, 메인 필드 후보 선정 과정에서 비영어권 음악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여기서 보팅 멤버란 그래미 후보와 수상자를 직접 결정하는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을 뜻합니다.
제가 직접 그래미 시상식을 수년간 지켜봐 왔는데, 본상 부문에서 비영어권 음악이 후보에 오른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건 데이터로도 확인됩니다. 아시아 팝 부문이 생긴다고 해서 올해의 앨범 후보에 K팝 앨범이 오를 가능성이 자동으로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아시아 음악은 아시아 부문에서 받으면 되잖아'라는 논리가 암묵적으로 작동할 위험도 있습니다.
반대로 이 논란이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압력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미 내부에서 아시아계 음악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본상 심사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외부 압력이 지속된다면, 제도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그건 별도 부문 신설이 아니라, 기존 평가 구조 자체를 바꾸는 방향에서 올 것이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그래미 아시안 팝 부문에 출품하면 올해의 앨범 같은 본상도 동시에 받을 수 있나요?
A. 그래미 측은 "한 아티스트가 아시아 팝 부문과 본상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고 공식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별도 부문과 본상을 동시에 수상한 선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제도상 가능하다는 것과 심사 문화상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다른 차원입니다.
Q. BTS가 그래미를 보이콧한 게 실제로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요?
A. 이미 충분한 성공을 거둔 아티스트가 자신에게 유리할 수도 있는 새로운 상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항의보다 훨씬 강한 메시지를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래미 내부 인사가 BTS의 보이콧을 "우리가 무너졌다"고 표현할 만큼 타격으로 받아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이 행동의 장기적 효과는 그래미가 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Q. 흑인이나 라틴 아티스트를 위한 별도 부문도 같은 문제가 있나요?
A. 그래미는 오랫동안 R&B, 랩, 라틴 장르에 별도 부문을 운영해 왔으며, 이 구조에 대해서도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별도 부문이 생겼음에도 올해의 앨범·올해의 레코드 같은 핵심 본상은 상대적으로 백인·미국 주류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입니다.
Q. K팝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실제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나요?
A. IFPI(세계음반산업협회)의 글로벌 뮤직 리포트에 따르면 K팝 스트리밍은 전체 글로벌 음악 시장의 약 7%를 차지합니다. 이는 K팝이 특정 지역 음악이 아닌 글로벌 장르로 이미 자리잡았다는 근거가 됩니다. 이 수치를 놓고 보면 K팝을 '아시아 팝'이라는 지역 카테고리로만 묶는 것이 시장 현실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저는 그래미의 아시아 팝 부문 신설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아시아계 아티스트들에게 후보 기회가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문이 다양성을 실제로 확장하는 통로가 되는지, 아니면 아시아 음악을 본상 경쟁에서 분리하는 구조적 장벽으로 굳어지는지는 앞으로 2~3년의 운영 방식을 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BTS의 보이콧 선언 이후 그래미 공식 계정에서 BTS 관련 영상이 삭제된 것도, 그래미 내부 인사의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도 — 제 경험상 이런 반응은 상대방의 행동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 때 나옵니다. 음악이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느냐보다 어떤 음악적 성취를 보여줬느냐로 평가받는 날이 온다면, 그때 그래미가 말하는 다양성도 비로소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고 봅니다. BTS 없이 열리는 다음 그래미 시상식이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지, 저는 그것이 이 논란의 실질적인 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