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저는 한동안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이해해야 하는 영화"로 분류해 뒀습니다. 제대로 볼 준비가 됐을 때 보겠다고 미뤄두는 영화들 있잖습니까. 그런데 막상 작품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니 오히려 이해를 포기했을 때 더 많은 게 보이는 감독이었습니다. 포르노 산업부터 석유 재벌, 종교 지도자, 재봉사까지 — 소재만 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자기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문제에 빠진 인간이 있었습니다.

한 감독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스펙트럼, 그런데 왜 전부 같은 느낌일까요
폴 토마스 앤더슨은 1970년 캘리포니아 스튜디오 시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란 샌퍼낸도 밸리(San Fernando Valley)는 할리우드와 지척이었지만, 꿈을 좇는 사람과 그 꿈에서 탈락한 사람이 뒤섞인 동네였습니다. 제가 직접 그 동네를 걸어본 건 아니지만, 그의 초기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 공기가 느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낙오자들의 냄새가 나는,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한 공기.
그는 뉴욕 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가 단 이틀 만에 자퇴했습니다. "터미네이터 2를 쓰고 싶으면 나가라"는 교수의 말에 반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직접 밝힌 바 있습니다. 이 일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예술 영화와 장르 영화 사이의 위계를 애초에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후 그는 뮤직비디오와 소규모 독립 영화 현장에서 제작 보조로 일하며 단편 〈담배와 커피〉를 만들었고, 이 작품이 1993년 선댄스 영화제 단편 프로그램에 오르면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첫 장편 〈리노의 도박사〉부터 최근작 〈리코리쉬 피자〉까지 총 아홉 편의 장편을 통해 그는 단 한 편도 타인과 공동으로 각본을 쓰지 않았습니다. 전부 단독 각본입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Roger Ebert)는 앤더슨을 "절제되고 진실된 디테일로 화면을 채우는 숙련된 기교의 감독"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제가 그의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도 바로 그 디테일이었습니다. 배경 속 인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대사가 아닌 침묵이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앤더슨 영화의 핵심 장치 중 하나는 유사 가족(pseudo-family)이라는 모티프입니다. 여기서 유사 가족이란, 혈연이 아닌 결핍과 외로움으로 뭉친 집단을 말합니다. 〈부기 나이트〉의 포르노 촬영 현장 식구들, 〈마그놀리아〉에서 샌퍼낸도 밸리를 가로지르는 아홉 개의 교차하는 삶, 〈마스터〉에서 프레디 퀠과 랭커스터 토드 사이의 기묘한 의존 관계까지 — 모두 이 유사 가족의 변형입니다. 제가 여러 작품을 한꺼번에 놓고 봤을 때 비로소 보인 공통점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그의 필름 미학(film aesthetics)에 대한 집착입니다. 필름 미학이란 디지털 촬영이 아닌 필름 카메라 특유의 질감과 빛, 색온도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영화 제작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산업이 디지털로 전환한 시점에서도 앤더슨은 여전히 필름으로 찍습니다. 그는 영화 제작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볼 때마다 무슨 내용인지 설명하지 못해도 그 경험이 즐겁다는 그의 말이, 저는 솔직히 처음엔 회피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보고 나서 한동안 뭐라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그 감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게 회피가 아니라 정확한 묘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단독 각본 고집: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 아홉 편 전부 단독 집필
- 유사 가족 모티프: 혈연이 아닌 결핍과 외로움으로 묶인 집단이 반복 등장
- 필름 미학 고수: 디지털 전환 시대에도 필름 카메라의 질감을 의식적으로 선택
- 시대 배경의 정밀한 재현: 각 영화가 20세기의 특정 역사적 순간을 배경으로 삼되, 그 시대정신을 영화적 경험으로 압축
- 전작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작업 방식: 매 작품마다 이전 영화와 의식적으로 다른 장르와 분위기를 선택
거대한 시대를 말하면서 끝까지 인간을 놓치지 않는 감독이 얼마나 될까요
제가 앤더슨 영화를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명확한 주제 선언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자본주의와 종교, 미국 개인주의의 충돌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앤더슨 본인은 "그런 맥락을 너무 앞세우면 오히려 흐릿해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다니엘 플레인뷰와 일라이 선데이라는 두 남자의 욕망과 충돌, 즉 인간 대 인간의 싸움을 먼저 따라가다 보면 그 뒤의 모든 사회적 맥락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는다고 봤습니다. 제가 직접 이 영화를 두 번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자본주의 우화로 읽었고, 두 번째엔 그냥 두 인간이 서로를 망가뜨리는 이야기로 봤는데, 두 번째 감상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마스터〉는 이 방식이 가장 극단적으로 밀어붙여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IMDb 기준 평점 7.1로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엇갈린 작품이기도 한데, 저는 이 영화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가 서사 구조보다 두 캐릭터 사이의 감정이 단순한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이 연기한 랭커스터 토드와 호아킨 피닉스의 프레디 퀠은 스승과 제자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 관계입니다. 여기서 자기 파괴적 성향(self-destructive tendency)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자기 파괴적 성향이란, 인물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심리적 패턴을 말합니다. 앤더슨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이 패턴을 공유합니다.
〈부기 나이트〉의 더크 디글러, 〈매그놀리아〉의 여러 인물들, 〈팬텀 스레드〉의 레이놀즈 우드콕까지 — 이들은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관계를 밀어냅니다. 앤더슨은 이걸 억지로 봉합하거나 극적인 화해로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래서 이 영화가 결국 뭘 말하려는 건데?"라는 답답함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히어런트 바이스〉나 〈마스터〉처럼 서사가 느슨한 작품은 특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 모호함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인물의 얼굴과 관계의 이상한 긴장감을 따라가면 —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이 남습니다.
〈리코리쉬 피자〉는 그의 영화 중 가장 가볍게 느껴지는 작품이지만, 사실 가장 조심스러운 주제를 다룹니다. 15살 앨러나와 25살 게리 사이의 관계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의 감정을 진지하게 따라가는 방식은, 앤더슨이 캐릭터를 심판하는 대신 끝까지 바라보는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캐릭터를 판단하기보다 그 관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것 — 이것이 결국 앤더슨 영화가 시대극이면서도 지금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 처음 본다면 어떤 작품부터 보는 게 좋을까요?
A. 저는 〈부기 나이트〉나 〈매그놀리아〉를 먼저 보길 권합니다. 두 작품 모두 복잡한 다중 플롯 구조지만, 캐릭터들이 워낙 생동감 있어서 서사에 쉽게 올라탈 수 있습니다. 〈마스터〉나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몇 작품을 먼저 보고 나서 그의 스타일에 익숙해진 뒤에 보면 훨씬 잘 맞습니다.
Q.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뭔가요?
A. 명확한 결론이나 주제 선언을 주지 않는 방식 때문입니다. 앤더슨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인물 사이의 감정과 관계를 먼저 따라갑니다. 이 때문에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파악하려 하면 오히려 거리감이 생깁니다. 이해보다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잘 맞는 감독입니다.
Q. 폴 토마스 앤더슨이 모든 영화를 혼자 각본을 쓰는 게 맞나요?
A. 맞습니다. 〈리노의 도박사〉부터 〈리코리쉬 피자〉까지 아홉 편 전부 단독 각본입니다. 단,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을,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토마스 핀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각색한 작품이라 완전한 오리지널 각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각색 작업 역시 단독으로 진행했습니다.
Q.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에서 반복되는 주제가 있나요?
A. 유사 가족, 자기 파괴적 성향, 결핍에서 비롯되는 관계 — 이 세 가지가 거의 모든 작품에 걸쳐 반복됩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에 놓여 있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와 연결되려 한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이 반복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의 영화가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결론
앤더슨의 영화가 오래 남는 이유는 완벽한 답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사랑하면서 동시에 관계를 망가뜨리는 인간, 구원받고 싶어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밀어내는 인간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의 영화들을 다시 떠올렸을 때 남는 건 주제가 아니라 얼굴과 분위기와 긴장감이었습니다. 이건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전달되는 영화입니다.
앤더슨 영화가 낯설거나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번 기회에 한 편만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이해하려는 시도를 잠깐 내려두고, 그냥 인물의 얼굴을 따라가 보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두 번째로 봤을 때 비로소 그의 영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