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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전범선 이인직 후손 고백 재주목 (친일파, 역사인식, 연좌제)

by hoziii 2026. 8. 18.

솔직히 저는 전범선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밴드 양반들의 보컬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인직이라는 사실을 직접, 그것도 상당히 담담하게 고백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숨기는 것도, 미화하는 것도 아니라 "명백하게 친일 행위를 한 사람"이라고 잘라 말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사실과 역사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태도가 역사 인식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인직은 누구인가 — 신소설 작가와 친일파 사이

이인직은 한국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교과서에 실릴 만큼 문학사적으로는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소설이란 개화기에 등장한 근대 소설 양식으로, 전통 고전소설과 달리 근대적 주제와 언문일치체를 도입한 형식을 가리킵니다. 그의 대표작 《혈의 누》는 지금도 근대문학사 서술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인직은 동시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올라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이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리스트로, 일제강점기 당시 반민족적 협력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 인물들을 정리한 공적 기록입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이인직의 친일 행위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은 이완용이 경술국치, 즉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일본 측과 교섭하는 자리에서 통역을 담당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를 넘기겠다는 이완용의 말을 일본어로 옮긴 사람이 이인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처음 접했을 때 꽤 오랫동안 생각이 멈췄습니다. 문학사에서 배운 인물과 역사의 가해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쉽게 겹쳐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인물의 문학적 업적과 정치적 행적을 동시에 보는 것,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불편한 일인지를 이인직이라는 사례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인직의 대표작: 《혈의 누》(1906) —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평가
  •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 등재: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공식 발표
  • 경술국치 당시 이완용의 통역 역할 수행 — 가장 직접적인 반민족 행위로 기록
요약: 이인직은 최초의 신소설 작가라는 문학사적 평가와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역사적 평가를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 두 얼굴을 함께 보는 것이 정직한 역사 인식의 출발점입니다.

 

전범선의 고백 — 역사 인식이 먼저였던 사람의 충격

전범선은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입니다. 단순히 역사에 관심이 많은 수준이 아니라, 헐버트 청년 모임 회장을 맡아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활동을 직접 해왔습니다. 여기서 헐버트 청년 모임이란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를 기리는 단체로, 한국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어느 날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이인직 집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닌데도, 그 상황을 상상하면 어떤 감각인지 조금은 가늠이 됩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와 정반대의 방향을 걸어간 사람이 내 핏줄이라는 사실, 그것도 국가를 넘기는 자리에 직접 개입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면 그건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혼란에 가까울 것입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범선이 그 충격을 털어놓으면서도 "너무 나쁜 놈인데 교과서에는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선양돼 있다"고 분명하게 말했다는 점입니다. 조상에 대한 감정적 방어도, 불필요한 자기비하도 없이 역사적 평가를 있는 그대로 진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오히려 역사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의 훈련된 반응이라고 느꼈습니다. 감정과 사실을 분리하는 능력이 역사 인식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요약: 독립운동을 알려온 역사학도가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가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과정은, 역사 인식이 가족사와 충돌할 때 어떤 태도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실제 사례입니다.

 

연좌제의 유혹 — 후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유명인의 가족사가 알려지는 순간, 인터넷에서는 종종 현재의 인물까지 함께 평가하거나 공격하는 흐름이 생깁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반응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합리적인 판단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좌제란 당사자가 아닌 가족이나 친족의 죄에 대해 본인에게도 형사적·사회적 책임을 묻는 방식을 말합니다. 한국에서 연좌제는 1980년 헌법 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적으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라진 개념이지만, 여론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작동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후손은 조상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 친일파 후손 담론에서 종종 빠집니다. 5대조, 그러니까 고조부의 고조부 정도 되는 인물의 행위를 이유로 현재 사람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래도 집안이 그러면…" 하는 막연한 감각이 있었는데, 솔직히 그 감각 자체가 연좌제적 사고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고 나서 반성했습니다.

물론 구분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후손이 조상의 친일 행적을 알고도 그것을 미화하거나 긍정적으로 소개한다면, 그 시점부터는 단순한 가족사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당사자의 태도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전범선의 경우처럼 불편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오히려 건강한 역사 인식에 가깝다고 봅니다.

요약: 연좌제는 법적으로 폐지된 개념이며, 후손이 조상의 행위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 친일파 후손 담론을 바라봐야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합니다.

 

좋은 역사 인식이란 무엇인가 — 불편한 사실 앞에서

전범선은 최근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한국의 200년 근현대사를 정리한 작업입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든 생각은 "자신의 가족사 안에 가장 불편한 챕터가 있는 사람이 한국 근현대사를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였습니다. 어쩌면 그 불편함이 오히려 더 정직한 서술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역사 인식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역사적 맥락화입니다. 역사적 맥락화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구조 속에서 이해하되, 그것이 현재의 도덕적 판단을 면제해주지는 않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인직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개화기라는 시대적 혼란, 친일을 선택하게 된 구조적 맥락은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경술국치 통역이라는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번 사례를 보면서 좋은 역사 인식의 기준이 결국 '내 쪽에 불리한 사실도 인정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조상을 미화하거나 감추려는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충동을 이겨내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역사학의 기본 태도이기도 합니다.

한편 배우 하영의 사례처럼, 충분한 검증 없이 조상을 긍정적으로 소개했다가 뒤늦게 친일 행적이 드러난 경우는 다른 문제입니다. 역사적 인물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행위는 개인의 가족사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가 바로 처음부터 불편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나중에 사과하는 것의 간극을 만들어냅니다. 어느 쪽이 역사에 더 정직한 태도인지는 제가 판단하기에 분명해 보입니다.

요약: 좋은 역사 인식은 내게 불편한 사실도 인정하고 미화하지 않는 데서 출발하며, 이것이 역사적 맥락화와 도덕적 판단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태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전범선이 이인직 후손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전범선 본인이 직접 자신의 5대조 할아버지가 이인직이라고 밝혔습니다. 숨기거나 부인하기보다는 조상의 친일 행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볼 수 있습니다.

 

Q. 이인직이 친일파로 분류된 근거는 무엇인가요?

A. 이인직은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에 공식 등재되어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근거는 1910년 경술국치 당시 이완용의 한일병합 교섭 자리에서 통역을 담당했다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문학사적으로는 최초의 신소설 작가로 평가되지만, 역사적 행적과는 별개로 반민족 행위 자체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실입니다.

 

Q. 친일파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재 인물을 비판하는 게 맞나요?

A. 후손은 조상을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혈연만을 이유로 현재 인물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은 1980년 헌법 개정을 통해 연좌제를 공식 폐지했습니다. 다만 후손 본인이 조상의 행적을 미화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경우, 그것은 혈연의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의 역사 인식 문제로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Q. 이인직의 《혈의 누》는 교과서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A. 《혈의 누》는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문학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교과서에서 근대문학의 시작점으로 소개됩니다. 문제는 많은 교과서가 이인직의 문학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고 친일 행적을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범선 본인도 "너무 나쁜 놈인데 교과서에는 최초의 신소설을 쓴 작가로 선양돼 있다"고 직접 지적했습니다. 한 인물의 업적과 행적을 균형 있게 서술하는 것이 교육 현장에서도 필요한 과제로 보입니다.

 

결론

전범선의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은 그가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됐다는 점입니다. 5대조 할아버지의 행적이 본인의 삶이나 경력에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이인직의 친일 행위를 짚었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 역사에 대해 보여줄 수 있는 태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인식이란 내게 유리한 역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부끄러운 사실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합니다. 친일파 후손을 바라보는 기준도 결국 거기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혈연이 아니라 그 역사를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이 핵심입니다. 이 사례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를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9VpIwAZZ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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