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저 사람, 토르 역할 하려고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오디션 탈락을 반복하고, 미국식 억양을 따로 배우며, 몸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던 배우입니다. 화려한 결과 뒤에 이런 과정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제가 그를 보는 눈이 꽤 달라졌습니다.

오디션 탈락이 만든 반전 — 갬빗에서 토르까지
흔히 크리스 헴스워스를 가리켜 "타고난 슈퍼히어로"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니 실상은 꽤 달랐습니다. 할리우드 데뷔작은 2009년 개봉한 SF 블록버스터 스타트렉: 더 비기닝이었는데, 극중 등장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도입부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맡아 강렬한 첫인상을 남겼고, 이 짧은 활약이 할리우드 캐스팅 디렉터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크리스가 도전한 역할은 엑스맨 시리즈의 갬빗(Gambit)이었습니다. 갬빗이란 마블 코믹스 원작에서 울버린, 사이클롭스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엑스맨 멤버 중 하나로, 당시 마블 영화가 본격화되기 전 슈퍼히어로 장르의 중심은 엑스맨 시리즈였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오디션이었고, 크리스는 그 어떤 배역에서 떨어졌을 때보다 이 탈락이 가장 아팠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탈락이 분기점이 됩니다. 마블 스튜디오가 토르 캐스팅 당시 내건 조건은 명확했습니다. 기존 슈퍼히어로를 연기한 적 없는 배우만 오디션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갬빗에 합격했다면 그 자격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대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패가 다음 기회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게 단순한 위로의 말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한 사례를 눈앞에서 확인한 기분이었습니다.
-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 5분 미만 등장, 강렬한 인트로 장면으로 주목
- 갬빗 오디션 탈락 — 당시 가장 큰 좌절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토르 오디션 자격 유지
- 토르 오디션 조건 — 기존 슈퍼히어로 미출연 배우만 지원 가능, 형제 모두·톰 히들스턴도 동시 지원
- 갬빗 솔로 무비 — 수년간 기획됐으나 각본·감독 교체를 반복하다 결국 제작 취소
토르 캐스팅 이후 — 혹평과 한국 흥행의 아이러니
토르 역할이 확정됐을 당시 미국 마블 팬들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체구가 너무 작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는데, 그 시절 크리스는 지금의 근육질과는 거리가 먼 호리호리한 체형이었으니 이해가 되는 반응이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크리스가 벌크업(bulk-up), 즉 근육량을 집중적으로 늘리는 고강도 식이·운동 조합 훈련을 감행했고, 2011년 토르: 천둥의 신 개봉 때 화면에 등장한 모습은 그 비판을 단번에 잠재웠습니다.
해당 작품은 출처: Rotten Tomatoes 기준으로 스토리 전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렸으나 비주얼과 SF적인 영상미는 호평을 받았고,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제가 지금 다시 1편을 보면 CGI(컴퓨터 생성 이미지) 기술, 즉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면을 컴퓨터로 합성해 만드는 특수효과의 완성도가 당시 기준으로 확실히 한 수 위였다는 게 느껴집니다.
반면 2편 토르: 다크 월드는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영화·드라마 시리즈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한 프랜차이즈 — 역사상 최하위권 평점을 기록했습니다. 28편이 쌓인 현재도 뒤에서 두 번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만큼 혹평이 이어졌죠. 메인 빌런 말레키스의 존재감 부재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그런데 제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만큼은 전편을 뛰어넘는 성적을 냈다는 점입니다. 1편 관객 수 269만 명을 넘어 300만 명 이상을 동원했고, 네이버 영화 평점도 1편보다 높습니다. 그 배경에는 로키 역의 톰 히들스턴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특유의 팬 서비스와 현란한 댄스를 선보인 것이 적잖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거기에 로키와 토르의 관계가 일종의 브로맨스(bromance) — 남성 간 깊은 우정과 케미스트리를 의미하는 대중문화 용어 — 서사로 읽히며 국내 팬들에게 특히 강하게 소구됐던 것 같습니다.
가족 이야기 — 운명처럼 읽히는 아내의 문신
크리스 헴스워스에 관한 이야기 중 제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아내 엘사 파타키의 문신입니다. 엘사의 팔뚝에는 북유럽 신화의 토르를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크리스를 만나기 무려 20년 전인 15살 때 스스로 선택해서 새겼다고 합니다. 10대 시절 북유럽 신화(Norse mythology), 즉 고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신과 영웅에 관한 전설 체계에 깊이 빠졌던 그녀가 특히 토르의 전설에서 아름다움을 느껴 문신으로 남긴 것이었죠. 그리고 훗날 영화 속 토르의 상징이 된 남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이 둘의 만남도 꽤 독특합니다. 크리스가 할리우드 진출을 위해 미국식 억양 교정을 받던 중, 그 과외 선생님이 같은 수업을 받던 엘사를 소개해줬다고 합니다. 처음엔 "키가 크네" 정도의 인상이었지만, 첫 전화 통화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감정이 빠르게 깊어졌다고 두 사람 모두 인정했습니다. 토르 오디션을 보기도 전인 2010년, 크리스가 27살 때 결혼식을 올렸으니 완전히 무명 배우 시절의 인연이었습니다.
크리스가 집 안에서는 아내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성격이라는 점도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 화면 밖에서도 압도적인 남성미를 뿜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인데, 실제로는 운전도 보통 아내가 맡고, 크리스 본인은 차 안에서 "천천히 좀 가자"고 부탁하는 쪽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이 겁쟁이, 당장 내려라"라며 핀잔을 준다는 일화는 꽤 웃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또 딸이 직접 그린 자화상을 팔뚝에 문신으로 새기고, 어깨에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새겼습니다. 딸이 아빠 품에 잠들 때 눈앞에 딱 보이는 위치라서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르: 다크 월드 촬영 중에는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이 해외 일정으로 재촬영에 참여하지 못하자, 크리스가 급하게 아내를 섭외해 가발을 씌우고 키스신을 대신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10대 시절 토르를 동경했던 소녀가, 토르 코스튬을 완벽하게 갖춰 입은 남편과 영화 속 키스신까지 찍게 된 셈입니다. 출처: IMDb에서도 이 에피소드는 토르: 다크 월드의 잘 알려진 비하인드 스토리로 기록돼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크리스 헴스워스가 갬빗 오디션에서 떨어진 게 정말 토르 캐스팅에 영향을 준 건가요?
A.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블 스튜디오는 토르 오디션 당시 기존 슈퍼히어로를 연기한 적 없는 배우만 지원 자격을 줬습니다. 갬빗에 합격했다면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아예 지원조차 못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 본인도 이 사실을 깨닫고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몸소 체험했다고 밝혔습니다.
Q. 토르: 다크 월드가 한국에서만 유독 흥행한 이유가 뭔가요?
A. 일반적으로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만 흥행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보기엔 이 경우엔 외부 요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로키 역을 맡은 톰 히들스턴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팬 서비스와 댄스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화제를 일으켰고, 토르와 로키의 브로맨스 서사가 국내 관객에게 특히 강하게 소구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Q. 크리스 헴스워스 아내 엘사 파타키 문신이 토르 관련이라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엘사 파타키의 팔뚝 문신은 북유럽 신화의 토르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크리스를 만나기 20년 전인 15살에 새긴 것입니다. 당시 북유럽 신화에 심취했던 그녀가 토르의 전설이 아름답다고 느껴 직접 선택한 문양이었고, 훗날 영화 속 토르를 연기하는 남편과 결혼하게 됐습니다.
Q. 톰 히들스턴이 원래 토르 오디션을 봤다는 게 맞나요?
A. 맞습니다. 톰 히들스턴은 원래 토르 역할로 오디션에 참가했고, 이를 위해 본래 마른 체형임에도 근육량을 10kg 늘리는 준비까지 했습니다. 최종 심사에서 탈락한 뒤 크리스를 처음 보고는 "저 비주얼이라면 납득된다"며 바로 수긍했다고 합니다. 이후 로키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오히려 MCU의 대표 빌런 중 하나가 됐습니다.
결론
크리스 헴스워스를 단순히 "운이 좋은 배우"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시각은 절반만 맞습니다. 뛰어난 외모와 신체 조건이라는 출발점의 유리함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유리함만으로는 갬빗 탈락 이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오디션장에 서는 것, 아무 기반도 없는 할리우드에서 억양부터 새로 배우는 것, 팬들의 냉담한 시선을 받으며 몸을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정리하면 타고난 조건을 무기로 완성하는 데는 결국 본인의 선택과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실패가 조건이 되고, 우연한 만남이 운명처럼 연결된 이야기들이 지금의 크리스 헴스워스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의 다음 행보인 헐크 호건 전기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제가 꽤 기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