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TV에서 보는 좌우 진영 싸움이 진짜 권력 다툼일까요? 다이얼로그(Dialogos) 유출 명단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명단에 담긴 구도였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진보 칼럼니스트와 트럼프 사위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이 글은 그 당혹감에서 출발합니다.

칼 슈미트가 100년 전에 던진 질문
정치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누군가의 이름을 꺼내기 껄끄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 최고의 법철학자였던 그는 1933년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당에 합류했고, 1934년 '장검의 밤' 학살을 정당화하는 글까지 썼습니다. 제목이 "총통이 법을 수호한다"였습니다. 그 제목 하나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충분히 설명됩니다.
그런데 제가 불편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석 일부가 틀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슈미트는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친구와 적의 구분'이란 단순한 호불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방식 자체가 타자와의 대립 구도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직접 정치 뉴스를 보며 느낀 것도 비슷합니다. 같은 당 후보가 내분을 일으키면 지지층이 결집하지 않고, 반대 진영이 강하게 공격해야 오히려 지지율이 오르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슈미트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주권론(Sovereignty)입니다. 그는 "주권자란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외 상태(Ausnahmezustand)란 평소의 법과 제도가 정지되는 비상 국면, 즉 전쟁·재난·폭동처럼 기존 규칙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을 가리킵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전 세계 정부가 집회를 금지하고 국경을 닫은 결정들이 국민투표나 의회 토론 없이 내려졌던 것을 떠올리면 이 개념이 추상적이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슈미트는 2차대전 종전 후 미군에 체포되었고, "나는 그저 지적 모험가였을 뿐"이라고 변호했습니다. 당시 검사가 던진 질문이 역사에 남습니다. "당신은 언제 악마와 절연했습니까?" 그는 끝내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고, 이후 학계 복귀 없이 고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책은 지금도 전 세계 좌우 정치인들이 몰래 읽습니다. 불편하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피터 틸이 22년 전에 써둔 설계도
2004년 피터 틸(Peter Thiel)이 쓴 에세이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실리콘밸리 투자자의 정치 칼럼 정도로 읽혔을 텐데, 지금 다시 보면 섬뜩할 정도로 구체적입니다. 그 글에서 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직접적인 길은 미국 헌법 때문에 막혀 있다. 그러나 법이 열거하지 않은 영역이 있다. 유엔처럼 끝없는 토론만 하는 조직 말고 비밀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민주주의 바깥에서 작동하는 정치적 틀이 필요하다.
정확히 2년 뒤인 2006년, 다이얼로그(Dialogos)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시간 순서가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스캔들이 터진 뒤 조직이 생긴 게 아니라, 설계도가 먼저 쓰여지고 조직이 세워진 것입니다.
틸이 그 에세이에서 인용을 가장 길게 한 철학자가 바로 칼 슈미트입니다. 그리고 틸은 다이얼로그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카테콘(Katechon)'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카테콘이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세상의 붕괴를 막는 억제자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무질서가 세상을 집어삼키지 못하도록 버텨주는 존재입니다. 틸은 다이얼로그를 그 역할을 맡을 조직으로 상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단순한 음모론과 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틸 본인이 직접 글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해석의 여지가 있더라도 출발점이 당사자의 문서라는 점은 다릅니다. 물론 글에 나온 의도가 실제 행동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다시 짚겠습니다.
- 2004년 — 피터 틸, 민주주의 외부에서 작동할 조직의 필요성을 에세이에 기술
- 2006년 — 다이얼로그(Dialogos) 설립
- 2025년 — 내부 문서 및 회원 명단 유출, 스캔들화
명단이 보여준 진짜 경계선
다이얼로그 유출 명단 222명을 처음 봤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이름들을 정치 성향별로 분류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리가 안 됩니다.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옆에 민주당 상원의원 코리 부커가 있고, 뉴욕타임스의 진보 논객과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같이 들어가 있습니다. 좌우 구분이 유의미하게 작동하지 않는 명단입니다.
이것을 두고 "좌우 대립 전부가 연극"이라고 결론짓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해석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정치에서 정책 노선 차이는 실재하고, 진영 간 갈등이 완전히 조작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치학에서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이라고 부르는 현상, 즉 지지 정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반대 정당이 싫어서 결집하는 구조가 엘리트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부정적 당파성이란 유권자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보다 반대 진영에 대한 혐오감으로 투표를 결정하는 현상을 말합니다(출처: Pew Research Center).
제가 직접 다양한 정치 콘텐츠를 보면서 느낀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느 진영 채널을 보든 결국 분노와 위협을 자극하는 메시지가 가장 빠르게 퍼집니다. 그 분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보다, 그 분노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다이얼로그는 유출된 내부 문서에서 스스로를 "초당파적 네트워크"라고 소개합니다. 좌우 구분이 없다는 걸 간판에 써놓은 것입니다.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진짜 경계선은 좌파와 우파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경계선이 어디인지는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진영 싸움이 권력 구도의 전부는 아닐 가능성을 생각해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흥미롭게 보는 것과 그대로 믿는 것 사이
솔직히 이야기하면, 이런 종류의 콘텐츠를 볼 때 제가 경계하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피터 틸, 칼 슈미트, 베스트팔렌 조약, 카테콘 같은 개념들이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매끄럽게 연결될수록, 저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게 됩니다.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해했다는 착각도 줍니다.
이 구도에서 제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국가보다 GDP가 큰 기업들이 등장하고, 테크 기업 창업자들이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지금, 앞으로 주권이 어디에 집중될 것인지 묻는 것은 의미 있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스탠퍼드 자유민주주의 연구소(Hoover Institution)를 비롯한 여러 싱크탱크에서도 기술 권력과 민주주의 제도 간의 긴장 관계를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Hoover Institution, Stanford University).
반면 제가 따라가기 어려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인들이 같은 모임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곧 '세계질서 전환을 22년 전부터 설계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비약입니다. 사실(fact)과 해석(interpretation)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을 놓치면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 그냥 실려가게 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반드시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칼 슈미트의 현실주의적 정치 분석이 일부 통찰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정치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제도, 타협, 시민 참여, 법에 의한 권력 제한도 현실 정치에서 작동합니다. '숨겨진 엘리트가 모든 것을 설계한다'는 서사는 복잡한 현실을 하나의 원인으로 단순화해줘서 매력적이지만, 바로 그 단순함이 위험 신호입니다. 이 콘텐츠를 완성된 진실이 아니라, '권력은 실제로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출발점으로 볼 때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다이얼로그(Dialogos)가 실제로 존재하는 조직인가요?
A. 네, 실제 존재합니다. 2006년 설립된 비공개 네트워크로, 2025년 내부 문서와 회원 명단 222명이 유출되면서 공론화되었습니다. 단, 유출 자료의 일부 내용이 어떻게 해석될 것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며, 조직의 실질적인 영향력 범위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Q. 칼 슈미트가 나치였다면 그의 이론은 폐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A. 이 부분은 학계에서도 오래된 논쟁입니다. 사람의 도덕적 과오와 이론의 분석적 유효성을 분리해서 볼 수 있다는 입장도 있고, 나치 부역 행위가 이론 자체를 오염시킨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저는 그의 이론 일부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보면서도, 그 이론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항상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부정적 당파성이 뭔가요? 한국에도 해당되는 개념인가요?
A.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이란 유권자가 지지 정당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반대 정당에 대한 혐오 때문에 투표하고 결집하는 현상입니다. 미국에서는 Pew Research Center가 이 현상을 데이터로 입증했고, 한국의 선거 패턴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된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좋아서 찍는 게 아니라 저쪽이 싫어서 찍는 구조입니다.
Q. 카테콘(Katechon)이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A. 카테콘은 신약성경 데살로니가후서에 나오는 그리스어 개념으로, 세상의 붕괴나 종말을 억제하는 존재 또는 세력을 뜻합니다. 칼 슈미트가 이 개념을 정치철학에 끌어들였고, 피터 틸은 이를 다이얼로그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기존 질서가 흔들릴 때 그 공백을 메울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결론
제가 이 사안을 들여다보면서 얻은 것은 하나의 확실한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정치적 갈등이 권력 구도의 전부인지, 그리고 앞으로 주권이 국가에서 다른 무언가로 이동할 때 그 자리를 어떤 기준으로 채울 것인지 하는 질문입니다.
다이얼로그 스캔들을 '비밀 조직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결론으로만 소비하면, 오히려 복잡한 권력 구조를 이해할 기회를 잃습니다. 피터 틸이 쓴 글, 칼 슈미트의 개념들, 명단에 담긴 구도를 각각 따로 뜯어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흥미롭게 보는 것과 그대로 믿는 것은 다릅니다. 그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지금 같은 정보 과잉 시대에 필요한 태도라고 봅니다.